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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중일기

    '브라이언 와이스' 저 - [ 나는 환생을 믿지 않았다 ]

    페이지 정보

    본문

    시간이 주워질 때 할 수 있는 좋아하는 것 한 가지는 뇌파ASMR (두뇌활성 사운드 같은?)을 틀어두고 차를 좀 우린 뒤 책을 뒤적이는 겁니다.
    대부분은 경전을 보지만 간혹 외전을 읽을 때도 있는데 가볍고도 진중한 마음으로 읽게된 외전 한 권이 있습니다.
    마이애미 대학교의 종신교수 '브라이언 와이스'박사의 [ 나는 환생을 믿지 않았다 ] 라는 책인데요.

    브라이언 박사는 예일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과학적 연구로 전 세계에 전생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정신과 의사중 한 명 입니다.
    과학적 설명이 가능하지 않으면 절대 관심이 없던 전형적인 의사였다가 환자의 최면 치료 과정 중 전생을 간접체험하면서 인생의 가치관에 대전환을 맞이한 저명한 분입니다.
    아마 이 분의 책을 이미 읽어보신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브라이언 박사가 캐서린을 최면치료하던 과정을 담았는데 그녀의 지구에서의 전생은 무려 여든 여섯번이나 됩니다.
    재밌는 것은 박사는 어릴 때 온 가족이 유태교 회당을 다닌 집안이었고,  캐서린은 절실한 카톨릭 신자로 전생, 윤회에 회의적인 사람들이었다는 것인데,
    기독교 계열이 예전부터 그렇진 않았다는 것을 박사는 이야기 해줍니다.

    " 콜롬비아 대학교 1학년 시절에 수강한 비교종교학의 교과서들을 다시 흝어 보았다.
    원래의 구약과 신약에는 분명히 환생에 대한 언급이 실려있었다.
    서기 325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그의 어머니는 신약에 실려있던 환생에 대한 언급을 삭제해버렸다.
    서기 553년 콘스탄티노플에서 두 번째로 열렸던 공의회는 이 조치를 승인하고 환생이라는 개념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은 이 개념이 인간에게 구원의 기회를 여러번 부여함으로써 교회의 권위를 약화시킬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분명히 환생에 대한 언급이 실린 성서 원본이 있었다.
    초기의 교회 지도자들은 환생이라는 개념을 인정했다.
    초기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에게도 전생이 있으며 후생도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

    책을 읽고 느끼는 점들이나 생각은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저 같은 경우는 읽으면서 태어나 지금까지의 라이프에 대입을 해보면서 읽게 되었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공포스러워 하는 것, 어떤 사람과의 관계, 처하게되는 상황들.....
    이번 생에 함축되어 나타난 '나'라는 존재는 이 전 어느 생 언제가 분명히 지금 이게 '나'일 수 밖에 없는 절대적인 인과가 반드시 있다는 것.
    아직 나타나지 않은 인과가 있다면 그 것 또한 언제가는 절대, 반드시, 정확히 거쳐야만 할 것이라는 것.
    사실 불교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진리이지만 일상 속에서 자주 망각하는 진실입니다.

    " 인내와 시기... 모든 것은 때가 되어야 이루어집니다.
    인생이란 서둘러 꾸려나갈 수 없고,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처럼 계획한 대로 진행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 이상을 바라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삶은 끝이 없기에, 우리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우리는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변화의 여러 국면 속을 지나가는 것입니다.
    끝은 없습니다.
    인간은 여러 차원 속을 살고 있습니다.
    시간은 우리가 보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시간은 우리가 얻은 가르침 속에 있습니다."

    이미 알고있는 불교 교리와 참 많이도 닮은 글을 읽으면서 진리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닌데 왜 우리는 '眞'이라는 것을 찾아 헤매일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깨달음이란 세수하다 코만지는 것과 같다' 하던 어느 큰 스님 말씀이 떠오릅니다.

    "... ... 영혼의 상태에서 배우는 것이 육체의 상태에서 배우는 것보다 훨씬 빠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배울 것을 선택합니다.
    관계를 통해 배우기 위해 돌아올 필요가 있을 때에는, 우리는 돌아옵니다.
    다 배우고 나면, 우리는 돌아갑니다...."

    "우리는 모두... 지배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탐욕이 될 수도 있고 욕정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성향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지배적인 성향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욕망을 극복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다음 생애로 넘어갈 때 그것을 또 다른 성향과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짐은 갈수록 무거워집니다.
    한 생애에서 이 빚을 갚지 못하면, 더욱 고된 생애가 이어집니다.
    빚을 갚으면, 더욱 편안한 생애가 주어집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선택합니다."

    부처님을 믿는다면, 연기를, 인과를 절대적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이 생을 완벽히 즐겨야 할 것 같습니다.
    '아, 난 왜 이런가' 하는 내 탓도,  '저 인간은 대체 왜 그러는가' 남 탓도, '여기 이 상황들이 왜 쳐해지는가' 현실 탓도 우리는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오로지 내가 그 언젠가 설계해둔대로 이 세계는 움직이고 있을 뿐이네요.
    나란 인간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저기 저 푸른 하늘과 초록의 나무들은 다 나 때문이니까요. ^^
     

    " 모두가 평등하다고 하셨지만, 명백한 모순들이 우리의 얼굴을 치고 있는 것은 어찌된 일입니까?
    품성과 기질이 다르고, 부와 권리가 다르고, 무수한 것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것은 마치 모든 사람 안에 들어 있는 커다란 다이아몬드를 찾아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름이 한 자쯤 되는 다이아몬드가 있다고 합시다.
    이 다이아몬드에는 천 개의 면이 있는데, 이 면들에 먼지가 앉고 때가 끼고 있습니다.
    그 면 하나하나를 깨끗이 닦아서 표면이 반짝이고 무지갯빛을 반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영혼의 임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많은 면을 닦아서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몇 개밖에 닦지 않아 초라한 빛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먼지와 때를 벗기고 나면, 모두가 가슴속에 천 개의 면으로 찬란히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소유하게 됩니다.
    그 다이아몬드는 완벽해서, 단 하나의 흠도 없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유일한 차이는, 깨끗이 닦인 면의 수입니다.
    모든 다이아몬드는 똑같으며, 완벽합니다.
    모든 면이 깨끗이 닦여 빛의 스펙트럼을 발하게 되면, 다이아몬드는 본래의 상태였던 순수한 에너지로 돌아갑니다.
    빛은 남습니다.
    그것은 마치 모든 압력이 풀려버린 상태에서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과정이 거꾸로 진행되는 것과 같습니다.
    순수한 에너지는 빛의 무지개 속에 존재하며, 그 빛은 의식과 지식을 소유합니다.
    모든 다이아몬드는 완벽합니다."

    이쯤에서 부처님의 위대함에 다시 한 번 더더더 찬사를 보내게 됩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 들 중에 극히 일부 밖에 되지 않거든요.
    무려 2565년 전,
    아니, 석가모니 이전의 과거 칠불 이전에도 우리는 교리에서 항상 말하듯 本來成佛한 존재 들이니까요.


    이 책에서 결론 일부 정리하자면 누구나 고귀한 존재임을 알아야하며 탐욕을 줄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야하고 궁극적으로는 진리를 찾아야함을 이야기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탐,진,치' 삼독을 제거해야한다고 하십니다.
    또 티벳불교에선 절대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보리심입니다.
    성철스님께서 늘 하시던 "남을 도웁시다"라는 말이 완벽하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종교는 쇠퇴하고 있습니다. 수행자의 수는 줄어들고 있고, 세상에는 종교색을 살짝 지운 명상이나 정신 치유, 힐링이라는 것들이 유행합니다.
    언젠가 어느 큰스님께서 특강 중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즘 바깥에서 유행하는 명상, 마음보기, 힐링 등등의 문제점 이야기 였는데, 먹을 것 다 먹고, 볼 것 다 보고, 할 것 다하며 즐길대로 즐기면서 명상이다 힐링이다를 찾는 것은 육체적 쾌락과 함께 정신적 쾌락을 즐기는 것일 뿐 참된 진리를 찾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류의 이야기 였습니다.
    고매한 가치를 가진 삶을 위해서 나는 좀 더 남을 위하고, 그저 아주 잠시 정착한 이 심신을 위한 쾌락은 자꾸만 지우고 버려야겠다 다짐해봅니다.

    제가 읽은 책의 일부만 잠깐 말씀드려 봤는데요. 안읽으신 분이 계신다면 한번쯤 보실만 할 것 같습니다.

    온 우주와 이 지구, 그 중 이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땅 오천만 인구 중 티끌 하나, 내가 불법과 인연이 되었다는 사실에 고맙습니다.
    이 전 어느 생 언젠가 인연이셨을 여러분, 꼭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