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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만다라" - 유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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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다라(구도, 해탈과 구원)

    수도승의 고뇌와 방황을 통해 진정한 깨달음이 무엇인가를 그린 임권택 감독의 1981년작. 한국영화, 당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김성동의 장편 소설 만다라를 영화한 것으로 임권택 감독의 89년작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모체가 되기도 한 작품이다.
    수도승의 두 가지 유형의 모습을 통해 해탈과 구원의 문제에 대한 고뇌를 빼어난 영상미로 밀도 있게 그려냈다.

    <만다라>는 두 구도승을 내세우는데 지산은 오랜 구도의 과정 속에서 파계를 하게 된 승려이고, 법운은 청정비구(淸淨比丘)로서 선 수행에 전념하는 아직 초년생의 승려로 등장한다. 법운의 구도과정은 자신의 불교 입문 장면은 생략된 채 반대 인물인 지산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를 만나게 되면서 법운은 지산의 말이나 행동이 자신이 추구하는 길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즉 방해자로서의 지산인 것이다.

    눈발이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하늘은 잿빛이었다. 눈송이는 부르짖으며 아우성치며 끝없는 생멸(生滅)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다함이 없는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처럼 수천수만의 만다라(曼陀羅)가 되어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었다.
    부르르, 진저리를 치면서 나는 기계적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앞서가는 지산의 바랑위로 수북하게 눈이 쌓여있고, 쌓여있는 눈 위로 또 눈이 덮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한국 전쟁 때 처형되고 어머니는 정신이상으로 가출한 법운은 수도승의 길을 걷다 파계승인 지산을 만난다. 지산은 눈이 마주친 한 여인 때문에 그동안에 모든 공부를 버린 파계승이다.

    법운은 지산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파계승이 될 용기도 없고 수도에 매진도 못하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긴다.

    젊은 구도승 법운은 인간 조건의 실존적 한계상황에 대한 해답을 불교의 가르침에서 찾기 위해 이미 출가한 터이다. 그의 출가와 고행은 그의 마음을 온전히 채우지 못한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파계승 지산과 잠시 도반이 됨으로써 삶의식이나 불교관에 있어서 변화가 생긴다.
    영화 만다라 이전의 불교영화는 대부분이 성자형(聖者形)범주에 포함된 것이다.
    김기영의 파계를 디딤돌로 해서 이 영화가 구도자형(求道者形)이란 새로운 양식의 가능성으로 제시되었다.

    법운이 찬바람 휘몰아치는 겨울 해변에서 좌선하는 아름다운 영상을 가리켜 만다라의명장면으로 손꼽는다. 법운이 견성에 도달한 성자여서가 아니라 견성으로 향해 수행하는 구도자여서 아름다운 것이다. 이 영화에  색다른 것이 없는 그저 양쪽에 나뭇잎이 떨어진 가로수가 죽 늘어서 있을 뿐인 시골길로 묘사된 인상적인 명장면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수행의 길(道)을 암시하고 있는 상징적인 영상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는 항상 늘 새로움이 시작되다. 그는 불교에 입문하던 당시로 되돌아간다. 스승이 던진 화두인 병 속의 새를 꺼내되 병을 깨지 않고 꺼내는 방법 을 추구하게 된다.


    멀리까지 곧게 뻗은 길
    피안으로 향하는 길인 듯 끝없이 뻗어 있는 그 길 위로 법운이 활기차게 걸어간다.
    이윽고 점처럼 까맣게 멀어져 가는 법운의 뒷모습…….

    영화의 클로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법운은 원작의 경우처럼 환속하지 않고 수행을 위해 새롭게 길을 떠난다. 그의 길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영화에서의 그는 수행자로서 꿋꿋한 위의를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애욕의 갈등은 지산의 몫이다. 승(僧)과 속(俗)이 서로 둘이 아니듯이 육체적인 쾌락도 영혼의 고통도 둘이 아니니라.

    영화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세상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깨달음을 주고 있다.
    인간이 지닌 허위성을 타인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