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총괄

2.수행의 체계

5)수행의 마당

불교에서 여러 가지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으나 모두가 방편일 뿐이니 피안으로 가는 도구로 사용하고 그 이후에는 그 방편마져 버려야 할 것이다. 부처님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 방편시설하였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방편도 중생 수만큼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불교에는 다양한 수행법이 있고 이를 일러 팔만사천법문이라고도 한다. 그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수행법만을 간추려 계율, 참선, 간경, 염불, 진언, 기도의 여섯마당으로 정리하였다. 각각의 수행법은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유기적인 관계에 있으므로 하나의 수행법을 중심으로 하더라도 다른 수행법을 겸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계율
불교 수행의 요체는 계정혜 삼학이다. 계는 신구의 삼업을 청정히 하는 것이요, 정은 고요히 머무르는 것이며, 혜는 지혜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세가지는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려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계가 바탕이 된다. 계율이란 수행자가 마땅히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을 정해주신 것으로 아직 지혜가 부족한 초심자는 오직 계율에 의지해서 길없는 길을 조심스럽게 가야 한다. 그리고 이미 수행이 익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계율이 지켜지게 된다.
계율수행을 하면 후회할 일이 없고 눈치볼 일이 없으며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게 된다. 따라서 걱정과 불안 두려움을 여읠 수 있다. 만일 계율 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몸과 마음은 산만하고 흐트러지며 번뇌망상과 욕망의 노예가 되어 생활은 불안정하고 고통의 연속이 될 것이다. 이런 중에는 다른 수행을 하기 어렵다. 그러나 일단 계율생활이 기본적으로 이루어지면 혹 하나의 계율을 어겼다고 하더라도 참회를 통해 다시 계심을 유지할 수 있고 다른 수행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다른 수행의 힘에 의해 계율은 다시 지켜지게 된다. 따라서 계율은 나침반과 같이 수행자가 스스로 자신을 점검할 수 있게 해준다. 수행을 잘 하고 있으면 계율이 저절로 잘 지켜질 것이고, 자꾸 계율을 어기면 수행도 잘 안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계율은 수행자의 길동무가 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계율수행은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집단에게도 평화와 안정을 주며 사회전체의 화합과 평화로 이어진다. 계율이 잘 지켜지면 그만큼 승가가 청정하고 화합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도 불법이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 계율을 제정하였다고 하였다. 따라서 계율 수행은 개인에게 있어서나 전체의 입장에서 모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참선
참선은 생사의 근원이 무엇이고 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앎으로써 윤회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수행법이다. 불교의 다른 수행법들도 모두 궁극적 목적은 해탈이고 성불이지만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빠르게 성품을 보게 하는 수행법이 바로 참선이다.
참선과 유사한 말로 선, 선나, 선정, 삼매, 지.관 등이 있다. 참선이란 이런 수행법들을 총칭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 당시에 하셨던 초선에서 상수멸에 이르는 선정과 37조도품, 위빠사나와 호흡관에서부터 중관의 반야공관, 유식의 유식관, 화엄의 해인삼매 천태의 일심삼관 등 실로 다양한 수행법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참선하면 중국 선종의 수행법을 이르는 말로 이해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임제선풍에 따른 간화선을 이르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화두참구가 참선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화두란 말머리 즉, 말 나오기 이전 자리를 말하고 참구란 생각과 분별을 끊고 직입하는 것을 말한다. 직입하면 말 나오기 이전을 봄이요, 성품을 봄이다. 즉 견성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점차적으로 알아가는 것이 아니고 담박에 깨치는 것이므로 돈오라고 한다.
이때 직입하게 하는 힘은 의심에 있다. 오직 의심으로 똘똘뭉쳐 모든 것을 잊고 무엇일까를 탐구하다 보면 철벽처럼 어둡고 깜깜하고 아득하던 화두가 툭- 트이는 순간, 화두가 타파되고 모든 낡은 껍질들을 벗게 된다. 나와 우주 만물의 참성품을 본 것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이었으며 거짓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참은 또 어떻게 그것과 함께 그렇게 오묘하게 있는지를 알게된다.

간경
간경은 경전을 읽고 듣고 옮겨 쓰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두루 익힘으로써, 오직 자신의 성품을 밝힐 길을 찾는 데에 목적을 두고 그것을 실천하는데 힘을 쓰는 수행이다. 따라서 간경은 수행자로 하여금 마음에서 허물이 생기는 것을 막아줄 뿐 아니라 바른 길로 인도하는 수행법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수행자로 하여금 반야를 깨우치는 올바른 과정과 단계를 익히게 함으로써 흔들림없는 믿음과 목숨을 건 분발심을 뒷받침하는 수행이다.
그러므로 경전을 읽는 이는 경전 속에서 부처님의 진실한 마음을 얻고자 해야지 지식을 쌓기 위해 또는 명예나 이익을 위해 읽지 않아야 한다. 즉, 경전을 읽을 때는 오직 스스로의 마음 속에 탐진치 삼독을 버리고 나와 남이 함께 성불하기 위한 방편을 찾는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염불
염불이란 부처님의 명호를 생각하는 것으로 소리내어 부르거나 상호를 관상하거나 실상을 관함으로써 부처를 보고 부처를 이루며 불국토에 나게 하는 수행법이다. 염불은 부처님 당시에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는 수행법으로 대승불교와 함께 더욱 대중적으로 행해졌다. 특히 정토불교에서는 염불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수행체계와 방법을 세워 발전시켰으므로 요즘은 염불하면 극락왕생을 떼 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염불이 불보살의 본원력에 의지하므로 타력신앙이라고 생각되지만 자력이 없는 타력은 결코 있을 수 없으므로 자력과 타력이 동시에 갖추어지는 수행이다. 더구나 정토란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므로 깨치고 나면 그곳이 바로 정토인 것이므로 마음 밖에 따로 정토가 없다. 따라서 마음 밖에 따로 불러서 찾아야할 부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없다는 의미가 아니며 분명히 있으나 외부 어디엔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중생의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토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정토에 나겠다는 생각만으로는 정토에 날 수 없으며 보리심을 발하고 십선을 닦아야 하는 것이다. 정토가 서쪽으로 십만팔천만리 밖에 있다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 부처와는 그만큼 거리가 있다는 것으로 실제로는 십선과 팔정도를 닦으면 그 거리는 바로 사라지고 곧 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서방극락정토에 계신다는 아미타부처님도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고 우리 마음의 바탕으로써 우리 마음이 청정해지면 무량한 광명이 이 마음으로부터 밝게 빛날 것이 틀림없다. 이러한 믿음으로 염불을 하는 것이다.

⑤진언
진언수행은 불보살님들의 자비로운 약속과 성불하려는 자신의 의지를 마음에 담는 공부법이며, 불보살님께서 일러주시고 여러 조사들께서 확인해주신 진실한 소리를 외움으로써 스스로 그 경계에 이르려는 공부법이다. 그러기에 진언을 외울 때에는 먼저 그것이 담고 있는 경계에 맞는 몸과 마음을 갖아야 한다. 즉, 진언을 공부하는 사람은 입으로 다라니를 외면서, 그 소리가 흩트러지지 않게 해야 하며, 생각에서도 다라니가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하고, 몸으로는 맺은 인이 풀어지지 않게 한다.
다라니를 입으로 송하고 마음에 삼매가 얻어지면 여래의 무상지를 얻어서 즉신성불하는 것이 진언수행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상보리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를 버리고, 죄업을 참회하며, 마음을 공으로 돌려야 한다. 진언수행은 업장소멸 등 대치에 있어 효과가 큰 만큼 주의깊은 배려가 필요하며, 특히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발음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 즉 어떤 삿됨과 잡됨도 없이 순일하게 진언에만 몰두해야 한다는 말이다.

⑥기도
기도는 일반적으로 신 등의 힘을 빌어 자기의 바람을 이루고자 하는 기원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처음에는 기도라는 수행법은 없었다. 그러나 민간신앙의 영향으로 부처도 하나의 신처럼 여겨지게 되고 부처님께 무수한 소원을 빌고 그것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신앙형태가 불교안에 자리잡게 되었다. 그래서 기도는 일반적인 수행법과는 성격이 자뭇 다르다. 기도가 과연 수행인가에 대한 논란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도는 분명히 수행이다. 왜냐하면 기도를 통해 삼매에 들고, 기도를 통해 과거의 무수한 잘못들이 저절로 참회가 되는 경험들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기도가 다 수행으로 통하지는 않는다. 기도가 수행법으로 확실히 자리잡기 위해서는 바른 지침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단지 개인적인 소원성취를 위해 기도를 한다면 그것은 불교에서 가장 경계하는 욕망의 흐름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밖에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교인들의 기도는 일반적인 형태의 기도와 달라야 한다. 즉, 올바른 기도를 위해서는 바른 목적의식과 바른 방법에 의해 행해져야 한다.
먼저 기도의 목적은 다른 수행법과 마찬가지로 무상보리를 얻기 위해서이고 그 공덕은 일체중생에게 회향되어야 한다. 비록 구체적인 목표를 기원하는 경우에도 그 목적은 여기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 이를테면 아들의 대학입시 합격을 기원한다고 할 때 대학에 합격하여 큰 일꾼이 되어 일체중생에게 이로움을 주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더불어 모든 수험생들이 장애없이 학업에 열중하기를 기원해야 한다. 만일 내 아들이 출세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른 누군가는 떨어지는 아픔을 겪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오직 내 아들만 합격하면 된다는 식의 기도는 안된다. 그리고 아무리 절박한 소원이라고 하더라도 한번 기도에 들어가서는 그것을 잊어버려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기도의 행위로서 절이건, 염불이건, 진언이건 바로 그것에 일념으로 집중해야 한다. 기도가 성취되려면 어떠한 잡념도 개입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기도를 한 후에도 그것은 잊어버려야 한다. 기도가 이루어질 건지 어쩔 건지 의심하거나 어지러운 생각을 내서는 안된다. 그리고는 결과에 대해서도 기도가 이루어졌건 안됐건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되면 이번에는 비록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기도의 공덕은 남는다. 그러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불만스럽게 생각한다면 오히려 불보살님께 누를 끼치는 일이 되고 만다.
이와같이 올바른 방법으로 기도를 한다면 기도도 또한 수행이다. 특히 수행 중에 어떤 장애가 있어 혼자 힘으로 극복하기 어려울 때 용맹정진하는 기도는 정진력을 길러주는 아주 요긴한 방법이다. 또한 수행자가 전일하게 수행을 해 나가기 위해서는 기도를 생활화하여 자기를 점검하고 다짐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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