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총괄

2.수행의 체계

6)수행법 간의 관계

근원에 돌아가면 둘이 없으나, 방편으로 여러가지 문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각자 편리한 대로 배나 수레를 이용하는 것이다. 만약 배를 타고 가는 사람이 수레를 비웃거나, 수레를 타고 가는 사람이 배를 비웃는다면, 모두 희론이 될 뿐이다.(<죽창수필> 3집)

본성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수행인데 그 방법에는 여러가지 길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스님들은 참선을 중심으로 율원과 강원에서 계율과 경전에 대한 공부가 이루어지고, 재가자들은 염불, 독경, 진언 등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수행법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신행형태로는 법회와 기도가 있다. 법회에서는 스님을 통해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 기도에서는 주로 개인적인 바람이 성취되기를 기원한다. 이렇게 다양한 수행법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조계종이 선종을 종지로 하고 있지만 한국불교의 전통을 모두 받아지닌 종단이다보니 선종과 교종으로 대별되는 다양한 종파의 성격이 모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중국과 일본과 달리 통불교적인 성격이 강하여 어느 것 하나만을 고집하지 않고 두루 갖추고 있는 특징이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하게 수행법들이 공존하다 보니 서로 충돌하는 측면도 있고, 수행법들이 체계가 없이 단절적이어서 초심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혼돈스럽다. 또한 참선의 경우 화두선만이 강조되어 다른 것은 무시된다거나, 기도의 경우 수행으로써의 의미를 갖추지 못하고 오히려 세속적 욕망을 부축이는 기복적인 측면만 남아 있기도 하고, 간경이나 염불, 진언의 경우 전체적인 의미도 모르고 입으로만 하는 경우도 있으며, 계율은 아예 무시되기 일쑤다.
따라서 이제부터 각각의 수행법들에 관한 정확한 이해와 지침에 따라 수행하기 바라며, 각각의 수행법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고 어리석게 하나만을 고집하고 다른 것을 그르다 하거나, 하나도 제대로 못하면서 이것저것 하느라고 우왕좌왕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염송하는 일이 선정에 방해스러움이 있지 않는가하고 의심하는 이들이 있는데, 선정이란 곧 사변과 육통의 근본이며 범부를 벗어나 성위에 드는 因이 되는지라, 잠시의 미세한 상념까지도 다 거두므로 上善이라고도 일컫는다. 그러나 반드시 혼침과 도거(掉擧)가 모두 녹아 없어질 때를 밝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에도 이르기를 "좌선이 혼매함에 빠지거든 반드시 떨치고 일어나 행도를 한다든가 또는 부처님을 염하며, 혹은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씻고 참회해서 두터운 업장을 제거하고 身心을 책발하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으니 참으로 한 가지의 수행문만을 집착해서 구경을 삼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또 慈愍三藏이 이르기를 "聖敎에서 설하신 올바른 선정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을 한 곳에 제어해서 생각생각이 이어지게 하고 혼침과 산란을 떠나서 평등하게 마음을 지니는 것을 이른다. 그러나 만일 졸음이 덮여와 가리거든 곧 모름지기 부지런히 책발하라. 염불송경하고 예배행도하며 講經설법하고 교화중생하는 등 만행을 폐하지 말아서 닦은 바 행업을 오직 왕생하는 발원으로 회향할 것이니, 이와 같이 선정을 닦아 익힌다면 이것이 곧 부처님의 선정이며 성교의 旨趣와 합하는 것이며 모든 부처님께서도 기꺼이 인가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의 불법이 평등하고 차별이 없어 모두가 一如로 乘合하며 나아가 끝내는 최정각을 이루게 되는 까닭이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혹은 염불을 인하여 삼매를 증득하고 혹은 좌선으로 좇아 지혜문을 발하며 혹은 송경을 오로지 하여 법신을 보고 혹은 다만 행도로써 성인의 경지에 드는 것이 오직 득도하는 데 그 뜻이 있는 지라 마침내 한 가지의 일정한 문만을 고집하여 취하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뜻을 오로지 한 정성만을 의지할 것이요 허망한 말들을 믿고 좇아서는 안되는 것이다.(<만선동귀집> 제2장)

각 수행법들은 모두 독특한 특징이 있어서 중생병을 고치는데 훌륭한 양약이 되므로 어느 것 하나만을 고집하지 말고 때에 따라 적합한 것을 행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어떻게 택법해야 하는가. 여기 사리불과 목건련의 예가 있다.
사리불 존자가 목건련한테 갔다. 그 때 마침 목건련의 제자 두 분이 목건련 앞에 와서 호소를 하였다. "우리들은 도저히 공부가 안 됩니다. 우리들은 벌써 출가한지가 오래 되었는데도 도저히 공부가 익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 두 분은 한 사람은 출가하기 전, 과거에 대장간에서 풀무질하는 일을 했고, 또 한 사람은 세탁업을 했다. 그런데 목건련이 그 사람의 개성을 잘 몰라서 풀무질하던 사람한테는 부정관을 시키고 세탁업하던 사람에게는 호흡관을 시켰던 것이다.
사리불이 이 사실을 알고 '아, 이것이 잘못 됐구나! 풀무질을 항시 했으니, 풀무질은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서 마치 호흡 모양으로 하는 것이니까, 그 사람한테는 마땅히 호흡관을 시켜야 하는 것이고, 또 빨래 세탁을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더러운 것을 자꾸만 빠는 것이니까 그 사람한테는 부정관을 시켜야 할텐데 ... ' 그래서 목건련에게 말했다.
"아, 그대가 참 잘못되었네. 마땅히 풀무질하다 온 사람한테는 수식관을 시켜야 하는 것이고, 빨래를 하는 직업이던 사람한테 대해서는 부정관을 시켜야 될 것인데."
그래서 그렇게 개성에, 적성에 맞춰서 행법을 제시하니까 이윽고 얼마 안 가서 그냥 깨달아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사람은 살아 온 습관에 따라 익숙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자기에게 맞는 것,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한가지라도 열심히 하다보면 구경에는 정각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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