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계율수행

4.계율수행의 실제

5)계율수행시 유의할 점

①타협하지 말라
계율은 적당히 타협하거나 양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죄의 허물은 큰 것이니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 삿된 것과는 결코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 사소한 것이라 가벼히 여긴다면 그 결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계심을 잃게 되어 결국은 수행을 파하게 된다. 계율은 나침반과 같고 안내자와 같다고 했는데 이것이 흔들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구명부대를 몸에 달고 바다를 건너려할 때 바닷속에 있던 나찰이 이 사람에게 구명부대를 달라고 하였다. 그 사람이 듣고 생각하기를 '이것을 주면 나는 반드시 물에 빠져 죽을 것이다.'하고 대답하였다. "네가 차라리 나를 죽일 지언정 구명부대는 줄 수 없다"하였더니 나찰이 또 말하기를 "그대가 만일 전부를 줄 수 없거든 반이라도 갈라 달라"한다. 그 사람이 그래도 주지 않으려 하였다. 나찰은 또 "그대가 반도 줄 수 없거든 3분의 1이라도 달라"하였으나 그래도 주지 않았다. 나찰은 또 "그것도 할 수 없으면 손바닥만큼 달라"하나 그것도 주지 않았다. 나찰은 다시 말한다. "그대가 만일 손바닥 만큼도 줄 수 없으면 내가 배가 고프고 고통이 심하니 티끌만큼이라도 달라"하였다. 그 사람은 또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네가 달라는 것은 얼마 되니는 않는다마는 내가 지금 바다를 건너가려 하는데 앞길이 얼마나 먼지 모르는 터에 조금이라도 네게 준다면 거기에서 기운이 점점 새어나올 것이니 드넓은 바다를 어떻게 건너가며 물에 뻐져 죽는 일을 면할 수 있겠느냐"하였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계율을 수호하고 지니는 것도 그와 같아서 바다를 건너가는 사람이 구명부대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과 같느느라. <대열반경 11권 성행품>

열반경의 비유는 계율수행자가 가져야할 태도를 잘 표현해 준다. 바다에서 배에 물이 샌다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구멍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국 그 배는 침몰하고 말 것이다. 계율도 이와같다. 계율을 어기고도 자기 편리할 때로 합리화시키며 이것은 사소한 것이니까 괜찮을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이는 계의 뿌리를 파괴하는 것이요, 결국은 전부를 잃게 될 것이다. 따라서 결코 계율수행에 있어서 적당한 타협은 없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②지범개차를 배우라
계를 지킬 때는 열반경의 구명부대의 비유처럼 목숨같이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그러나 지키는 것만 알고 파하는 것을 모르면 또한 계에 얽메임을 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때에는 더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어떤 것에 의하여 계를 파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을 잘 알아서 열고 막는 법을 행하는 것이 지범개차이다. 쉬운 예로 도망 온 사슴을 감춰 주고 사냥군에게 어디로 갔는지 못보았다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 그 나무꾼은 복을 받는 것처럼 계율수행에서도 지켜야할 때와 어겨야 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불교의 핵심사상은 중도에 있다. 어느 것이나 한 쪽에 치우치면 불교 수행이 아니다. 계율 수행도 마찬가지이다. 문자에 치우쳐 근본 뜻을 잃는다면 바른 수행이라 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계율 수행에서 지범개차라고 하는 불교 특유의 실천법이 나오는 것이다. 즉 문자에 얽메이지 말고 계의 정신을 바로 세우고 자유롭게 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이 자의적으로 빠질 때에는 자칫 방종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분명한 원칙이 필요한데 <보살선계경>에서는 보리심이 기준이 됨을 밝히고 있다.

두가지 인연이 있으면 보살계를 잃게 되나니, 첫째는 보리에서 물러나는 것이고, 둘째는 상악심을 갖는 것이다.

계율수행은 삿된 것을 버리고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인데 이것을 재대로 분별하여 실천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하는데 첫째는 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항상 나쁜 마음을 갖는 것이다. 계율수행자가 항상 나쁜 마음을 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보리심에서 물러나지만 않으면 보살계를 잃지 않는다. 마음이 잘 따르고(행동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하나되어 행함) 지혜로써 분별해야(어떻게 하는 것이 삿됨을 버리고 근본으로 돌아가는 길인지, 어떤 것이 진정한 이타인지 등을 잘 알아서 계를 지킴) 계율수행을 바르게 해나갈 수 있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계를 열고 막음에 걸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즉, 언제나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는 근본 뜻에 비추어 현실의 상황에 즉해서 그것을 구현하는 것이 계율 수행의 바른 태도이다.

③타인과 비교하지 말라
계율수행을 하면서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나는 계를 지킨다는 상을 가지고 교만한 마음을 내어 계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미워하고 업신여기는 것이다. 이는 공동체의 화합을 깨치며 자비심을 없앰으로 오히려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의 상이 본래 없으며 나와 내 것이 없으므로 계를 지켰다거나 어겼다고 할 만한 정해진 모양이 없는 것이니 겉모양을 가지고 시비를 논할 일이 아닌 것이다. 계율 수행을 할 때에는 오직 자신을 관찰하고 한치도 어긋남이 없게 하는 데 힘쓸 것이지 다른 사람을 보고 시비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집에 있는 보살이 계율을 깨뜨린 비구를 보면 성을 내거나 업신여겨서는 안되고 가엾이 여기며 이롭게 하려는 마음을 내면서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
'애닯구나, 사람 몸은 얻기 어려워서 큰 바다 가운데서 어느 애꾸눈인 거북의 머리가 판자 구멍으로 들어간 것과 같으며, 인간 안에 살고 있음은 이보다 갑절이나 더 어렵다. 이미 부처님의 법을 들었는지라 모든 악을 없앨 수 있고 모든 괴로움을 건지며 바른 지혜에 이르게 되어 살림의 온갖 크고 작은 것들을 버리고 영원히 친척을 끊어 사모한 바가 없으며 부처님의 말씀을 믿은 까닭에 집을 떠날 수 있었으리라. 언제나 계율 깨뜨린 죄를 듣는데 스스로를 천하게 하고 지혜로운 이의 꾸지람을 받으며 악한 이름이 널리 퍼져서 항상 의심과 뉘우침을 품게 되고 죽으면 나쁜 길에 떨러지리라. 이런 일을 듣게 되면서도 오히려 계율을 깨뜨리는구나. 열가지 선한 도를 행해야 비로소 사람 몸을 얻는 것인데 법답게 잘 쓰고 자신을 이롭게 할 수 없으니 애닯구나'
만약 도무지 성내거나 업신여기는 마음을 여읠 수 없다면 스스로 생각하라. 경전 중에서 말씀한 것과 같이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약 사람이 다른 이를 헤아리면 곧 자신의 몸을 상하는 것이요, 오직 자기만은 헤아릴 수가 있고 중생이 나와 평등하면 역시 헤아릴 수 있다고 한다. <십주비바사론 입사품>

지혜가 부처님의 지혜와 같지 않고 중생에 대해 동체대비심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해 평가하거나 판단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어떤 시비를 논한다면 그것은 어느 한 부분만을 보고 했거나 자신의 편견이 개입된 것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 대해 거슬리는 부분이 생기거든 먼저 자신의 내면을 살펴 자신이 만들어낸 인상이 아닌지 잘 봐야 할 것이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석남로 557번 Tel) 052-264-8900 Fax)052-264-8908
Copyright 2006 (c) 가지산 석남사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