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참선수행

3.참선수행의 방법

1) 관법(觀法)

현재 조계종단의 선원에서는 관법수행의 단계를 체택하지 않고 곧 바로 화두에 들어간다. 혹 어떤 사람은 화두들기 전에 관법수행을 체택하는 것을 두고 조계종의 전통 선법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식관, 부정관, 인연관, 불타관, 자비관, 사념처관 등의 관법은 재가불자가 일상생활 속에서 참선수행을 닦아갈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수행법이며 예로부터 참선 중에 나타나는 장애를 극복하는 대치법으로 익혀 오던 방편이다.

관법수행에는 다섯 문이 있으니, 첫째는 수식관(數息觀)이요, 둘째는 부정관(不淨觀)이며, 셋째는 자비관(慈悲觀)이요, 넷째는 인연관(因緣觀)이며, 다섯째는 불타관(佛陀觀)이다. 수식. 부정. 인연. 등 이 세문에는 안팎의 경계가 있고 불타관. 자비관은 바깥 경계를 반연한다. 이 다섯 문은 중생들의 병을 따르는 것이다. 즉 마음에 번뇌가 많은 사람에게는 수식관을 가르치고, 탐욕심(貪慾心)이 많은 이에게는 부정관을 가르치고, 화(瞋心)를 잘 내는 사람에게는 자비관을 가르치고, 집착심(執着心)이 많은 사람에게는 인연관을 가르치고, 마음이 흐릿한 사람에게는 염불(佛陀觀)을 가르친다." <오문선경요용법>

옛부터 참선수행의 5방편문으로 장애에 따른 처방법으로 즐겨 사용되 오던 관법들이 있다. 이들 오방편 중에서 수식관은 수식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호흡에 대한 관을 통해 궁극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안반수의경에 의거하여 소개하겠다. 부정관은 사념처관 중에 몸에 대한 관찰에 포함되는 내용이므로 몸에 대한 관찰 속에서 이야기 될 것이다. 자비관은 지혜와 자비를 증득하고자 하는 불교수행자들이 즐겨 익혀야할 수행법이며 가장 쉽게 실천하면서 가장 쉽게 공덕의 결과를 맛볼 수 있는 수행법이 될 것이다. 인연관은 법에 대한 관찰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다만 불타관은 염불수행에서 다루어지므로 생략하였다.

①호흡에 대한 관
호흡관은 수식관이라하여 참선수행의 가장 기초적인 행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종단의 통상적인 방법에서 탈피해서 부처님 당시의 호흡관에 근거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호흡관은 사념처관의 신념처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독립적인 행법으로 아나파나삿티(anapanasati)라 한다. 아나파나삿티는 번역하면 입출식념이라는 뜻으로 들숨과 날숨에 마음을 모으는 방법으로 안반수의라고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입출식념경>을 비롯하여 아함경의 여러 곳에서 보이고 있으며 사념처관에 관한 경전인 <대념처경>에서도 이야기 하고 있다. 특히, 중국에 불교가 전래될 때 가장 초기에 번역된 경전 중의 하나인 <안반수의경>에 매우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이 경에 의해 안반수의는 수식에서부터 상수, 지, 관, 환, 정에 이르는 6사와 4성제로 이어지면서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밝히고 있으며 초기불교의 수행법의 총체인 37조도품을 완성하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안반수의는 수식관이라는 협소한 영역에서 벗어나 호흡관을 통해 궁극적인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현실적인 행법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앞에서 불교의 호흡법은 자연스러운 호흡법이라고 했다. 그러나 초보자들의 경우 평상시에 그렇게 잘 쉬던 숨도 막상 앉아서 관하려고 하면 숨쉬기가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져 자연스러운 호흡이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심호흡을 몇 번 한다. 숨 쉬는게 한결 편해질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일단 숨이 골라 지면 들숨과 날숨을 따라 관하는데, 이때에도 초보자들은 집중이 잘 안되어 생각이 이리저리 굴러가거나 졸리기 쉽다. 따라서 숨을 들어마시고 내쉬면서 하나, 다시 들어마시고 내쉬면서 둘 하면서 열까지 센다. 수를 세다가 또 집중하지 못하고 놓치고는 딴 생각하기 일쑤다. 그러면 즉시 알아차리고 하나부터 다시 세어나간다. 이렇게 열까지 세어지고 집중이 되었다 싶으면 수는 헤아리지 말고 다만 호흡과정만을 관하도록 한다. 들고 나는 숨을 한 지점(주로 코끝)에서 계속 집중하면서 들어오고 나가는 숨이 차가운지, 따뜻한지, 긴지, 짧은지, 급한지, 완만한지, 거친지, 미세한지 등을 관하다보면 보면 어느새 몸과 마음이 고요해지고 집중되는 느낌이 확 온다. 그러다가 내가 사라지는 느낌, 우주와 하나가 된 느낌, 숨을 쉬는지 안쉬는지 모르게 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때 숨이 끊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하는데 이때에도 숨을 쉬어야지 하고 생각을 붙여 숨을 쉬려고 하지 말고 그냥 관하면 된다. 실제로 호흡이 끊기는 것이 아니고 의식하지 못할 만큼 미세해지기 때문이다. 또는 코로 숨을 쉰다는 느낌이 안들고 피부로 숨을 쉬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호흡관은 산란심을 잠재우고 고요하고 깊은 삼매로 이끄는 힘이 있다.
우리는 잠시라도 숨을 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실제로 그것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없다. 앞에서 수행은 언제나 깨어있음이라고 했다. 그 출발은 호흡에 깨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호흡을 하다보면 호흡은 내가 아니다. 몸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참나는?하는 물음에 이를 수 있다. 이러한 호흡관은 지와 관은 함께 닦고 가장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수행법으로 모든 수행법의 기초가 되면서 생사해탈의 열쇠를 쥐고 있는 관문이기도 하다. 그뿐아니라 심신이 경쾌해지고 수면이 단축되며 정신 집중력이 강해지고 삼매력을 키우는 터전이 굳어진다. <증일아함경 제17 안반품>에는 나운비구가 호흡관을 통해 삼매에 이르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한 나무 밑에 앉아 몸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잡고, 결가부좌하였다. 다른 생각이 없이 마음을 코 끝에 두고 긴 숨이 나가면 숨이 길다고 알고, 들어오는 숨이 길면 또한 숨이 길다고 알고, 나가는 숨이 짧으면 또한 숨이 짧다고 알고, 들어오는 숨이 짧으면 숨이 짧다고 알고, 나가는 숨이 차면 또한 숨이 차다고 알고, 들어오는 숨이 차면 또한 숨이 차다는 것을 알고, 나가는 숨이 따뜻하면 또한 숨이 따뜻하다고 알고, 들어오는 숨이 따뜻하면 숨이 따뜻하다는 것을 알았다. 때로는 숨이 있으면 있다고 안다. 때로는 숨이 없으면 또한 없다고 안다. 만약 숨이 마음으로부터 나가면 또한 마음으로부터 나간다고 알고, 만약 숨이 마음으로부터 들어오면 또한 마음으로부터 들어온다고 알았다. 이때에 나운은 이와같이 사유하고 욕심이 곧 해탈을 얻어 다시 악함이 없으며 깨닫고 관찰함에 기쁨과 평안함을 얻는 초선에서 놀며, 깨닫고 관찰함에 스스로 기뻐하여 일심으로 깨달음이 없고 관찰함이 없는 삼매의 기쁨인 이선에서 놀며, 다시 기쁨조차 없고 오로지 몸의 즐거움을 알고 성현의 가호를 구하는 것으로 기뻐하는 삼선에서 놀며 저 고락의 길이 멸하여 다시 금심이 없고 고가 없고 낙이 없고 생각이 청정한 사선에서 놀아 삼매 속에서 마음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었다. <증일아함경 제17 안반품>

②몸에 대한 관찰
몸에 대한 관찰은 먼저 몸은 지수화풍 사대로 이루어져 있음을 관한다. 뼈대와 살은 지대요, 피와 체액등은 수대요, 온기는 화대요, 호흡 및 기의 흐름은 풍대라 이렇게 사대로 이루져 있다가 죽으면 각기 흩어져 버리는 것이여서, 나라거나 내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특히 세속적 욕심과 몸에 대한 집착이 많은 사람은 부정관과 백골관을 통해 몸의 실상을 알고 집착을 떠나게 된다.(이하 내용은 대념처경을 인용한 것임)

*부정관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이 몸을 '위로는 머리끝에서 아래로는 발바닥까지 여러 가지 깨끗하지 못한 물질로 가득 차, 피부 주머니에 담겨져 있는 것으로 구별하면서, 이와 같이 생각한다. '이 몸에는 머리털, 몸털, 손톱, 치아, 피부,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염통, 간, 늑막, 지라, 허파, 창자, 창자 내용물, 위, 위 내용물, 똥, 담즙, 가래, 고름, 피, 땀, 지방, 눈물, 기름, 침, 콧물, 관절액, 오줌 등이 있다'고 관하라.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하면서 주하고,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하면서 주하며,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하면서 주한다. 또 몸에서 생겨나는 현상을 관하면서 주하고, 몸에서 멸해가는 현상을 관하면서 주하며, 몸에서 생했다가 멸해가는 현상을 관하면서 주한다. 그래서 관찰의 정도와 이해의 정도에 따라 "이것이 몸이다."라고 그 자각이 확립된다. 그는 초연하게 주하고, 세상의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자는 몸에서 몸을 관하면서 주한다.

*백골관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마치 공동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죽은 후 하루, 이틀 또는 사흘이 지나서 부풀고 검푸러지고 썩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이 몸을 주시하되, '이 몸도 이와 같은 현상(法, chamma)에 의해 이와 같이 되어서,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마치 공동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까마귀에게 먹혀지고, 매에게 먹혀지고, 독수리에게 먹혀지고, 표범에게 먹혀지고, 늑대에게 먹혀지고, 다른 여러 가지 살아 있는 것들에 의해 먹혀지는 것을 보고, 이 몸을 주시하되 '이 몸도 이와 같은 현상에 의해 이와 같이 되어서,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마치 공동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피와 살에 묻어 있는 채로 힘줄에 얽히어 해골로 변해 있음을 보고, 이 몸을 주시하되 '이 몸도 이와 같은 현상에 의해 이와 같이 되어서,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고 생각한다.

③일상생활에서 관

*행동에 대한 관
수행자들이여, 가면서는 '나는 가고 있다'고 관하고, 서서는 '나는 서 있다'고 관하고, 앉아 있으면서는 '나는 앉아 있다'고 관하고, 누워 있으면서는 '나는 누워 있다'고 관한다. 이와 같이 어떠한 상태로든 그의 몸이 놓여 있는 그대로 그것들을 놓지 말고 잘 관하라.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앞으로 갈 때나 뒤돌아서 갈 때나 이를 완전히 알고, 앞을 볼 때나 뒤를 볼 때나 이를 완전히 알며, 구부릴 때나 펼 때나 이를 완전히 안다. 옷을 입거나 발우를 들 때도 이를 놓지 말고 완전히 관하여 알고, 먹고 마시고 씹으면서 맛볼 때도 이를 완전히 관찰하여 알며, 대소변을 볼 때도 이를 완전히 관찰하여 안다. 가면서나 서서나 앉아서나 잠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말할 때나 묵묵히 있을 때도 한동작 한동작을 완전히 관찰하라.

*느낌에 대한 관
수행자들이여, 수행자가 어떻게 감각에서 감각을 관하면서 주하는가? 수행자는 즐거운 감각을 느끼면서는 '나는 즐거운 감각을 느낀다'고 잘 알고, 괴로운 감각을 느끼면서는 '나는 괴로운 감각을 느낀다'고 잘 알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느끼면서는 '나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느낀다'고 잘 안다. 육체적 즐거운 감각을 느끼면서는 '나는 육체적 즐거운 감각을 느낀다'고 잘 알고, 정신적 즐거운 감각을 느끼면서는 '나는 정신적 즐거운 감각을 느낀다'고 잘 안다. 육체적 괴로운 감각을 느끼면서는 '나는 육체적 괴로운 감각을 느낀다'고 잘 알며, 정신적 괴로운 감각을 느끼면서는 '나는 정신적 괴로운 감각을 느낀다'고 잘 안다. 육체적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느끼면서는 '나는 육체적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느낀다'고 잘 알고, 정신적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느끼면서는 '나는 정신적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느낀다'고 잘 안다.
이와 같이 안으로 감각에서 감각을 관찰하면서 주하고, 밖으로 감각에서 감각을 관찰하면서 주하며, 안팎으로 감각에서 감각을 관찰하면서 주한다. 또 감각에서 생겨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주하고, 감각에서 멸해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주하며, 감각에서 생했다가 멸해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주한다. 그래서 관찰의 정도와 이해의 정도에 따라 "이것이 감각이다."라고 그 자각이 확립된다. 그는 초연하게 주하고, 세상의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자는 감각에서 감각을 관찰하면서 주한다.

*마음에 대한 관
수행자들이여, 수행자가 어떻게 마음에서 마음을 관하면서 주하는가? 애욕(愛欲)이 있으면 '내 안에 애욕이 있다'고 알고, 애욕이 없으면 '내 안에 애욕이 없다'고 잘 안다. 그는 또 아직 생겨나지 않은 애욕이 생겨나면 그대로 그것을 잘 알고, 이미 생겨난 애욕이 멸해지면 그대로 그것을 잘 알며, 이미 멸해진 애욕이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대로 그것을 잘 안다.
성냄(瞋表)이 있으면 '내 안에 성냄이 있다'고 알고, 성냄이 없으면 '내 안에 성냄이 없다'고 잘 안다. 그는 또 아직 생겨나지 않은 성냄이 생겨나면 그대로 그것을 잘 알고, 이미 생겨난 성냄이 멸해지면 그대로 그것을 잘 알며, 이미 멸해진 성냄이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대로 그것을 잘 안다.
나태와 졸음(昏沈)이 있으면 '내 안에 나태와 졸음이 있다'고 알고, 나태와 졸음이 없으면 '내 안에 나태와 졸음이 없다'고 안다. 그는 또 아직 생겨나지 않은 나태와 졸음이 생겨나면 그대로 그것을 알고, 이미 생겨난 나태와 졸음이 멸해지면 그대로 그것을 알며, 이미 멸해진 나태와 졸음이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대로 그것을 안다.
동요(掉擧)와 걱정(悔)이 있으면 '내 안에 동요와 걱정이 있다'고 알고, 동요와 걱정이 없으면 '내 안에 동요와 걱정이 없다'고 안다. 그는 또 아직 생겨나지 않은 동요와 걱정이 생겨나면 그대로 그것을 알고, 이미 생겨난 동요와 걱정이 멸해지면 그대로 그것을 알며, 이미 멸해진 동요와 걱정이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대로 그것을 안다.
의혹(疑)이 있으면, '내 안에 의혹이 있다'고 알고, 안으로 의혹이 없으면 '내 안에 의혹이 없다'고 안다. 그는 또 아직 생겨나지 않은 의혹이 생겨나면 그대로 그것을 알고, 이미 생겨난 의혹이 멸해지면 그대로 그것을 알며, 이미 멸해진 의혹이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대로 그것을 안다.

이상과 같이 일상생활에서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머무른다. 그리고 순간 순간 일어나는 느낌과 생각 등 여러 가지 심리적 현상들을 관하여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자기 자신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 즉,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생겨나며 생겨났다가는 잠시 머물다가 사라지는 것임을 알게 된다. 또한 나라거나 내것이라고 집착할 만한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되고 집착으로부터 해탈을 얻게 된다.

④진리에 대한 관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의 현상을 관찰하라.
어떻게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현상을 관찰하는가? 수행자는 "이것은 고통(苦)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如實)잘 관찰하고, "이것은 고통의 원인(集)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잘 관찰하고, "이것은 고통의 소멸(滅)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잘 관찰하고, 이것은 고통을 소멸하는 길(道)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잘 관찰하라.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직후 깨달음의 세계를 점검하시기 위해 12연기법(緣起法)을 순과 역으로 관찰하셨다. 그리하여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음으로 이것이 있다. 그런고로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도 없다." 라는 그 유명한 연기법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와 같은 의미와 방법으로 진리의 세계를 관찰하여 이치를 깨닫고자 하는 것이다.

혹 어떤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제 마음이 깨끗하고 묘한 덕을 가졌다는 말을 듣고, 믿고 즐거워하여 닦아 익힌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나>라는 상에 굳게 집착하여 그 습기가 너무 무거움으로써 갖은 의혹의 장애를 일으켜 정을 잊지 못하는 이는, <사람들의 몸이나 마음은 사대와 오읍이 인연을 따라 허깨비로 난 것으로서 거젓이여 진실이 아닌 것이 마치 뜬 물거품과 같아서 그 속이 비었는데, 무엇을 나라고 하고 무엇을 남이라고 하겠는가?라는 공관으로 그 견해를 부수어야 한다. <보조국사 권수정혜결사문>

이와 같이 불법의 이치를 깊이 사유하고 관함으로써 사견과 여러 가지 마음의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동사법법회에서 '주전자명상'이 있다. 대중들은 주전자를 보고 감사할 점을 찾는다.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하면서 한두가지 적기 시작한다. 그러나 30. 50, 100가지를 넘어가면서 주전자 속에 우주가 담겨있음을 알게 되고, '하물며 이런 조그만 주전자도 이럴 진데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사람이야' 하면서 인간과 자기자신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하게 된다. 연기란 이런 것이다. 우리는 연기의 존재이기에 무아이면서 동시에 우주의 주인인 것이다. 모든 것의 은혜 속에서 살며 자리와 이타가 둘이 아닌 줄 알게 된다.
진리에 대한 관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진리를 깊이 사유함으로써 현실에서 그것을 재발견하는 지혜를 준다.

⑤자비관(慈悲觀)
사무량관법이 있다. 불도를 구하는 이는 사무량심을 행해야 한다. 그 마음이 무량하기 때문에 그 공덕도 무량한 것이다. 중생들 중에는 무릇 세 가지 부류가 있으니, 첫째는 부모.친척.좋은 벗 등이요, 둘째는 원수.도적.악인들로서 항상 괴롭히고 해치려는 부류이며, 셋째는 중인으로서 친하지도 않고 원수도 아닌 부류다.
수행하는 사람은 이 세부류의 사람들을 모두 인자한 마음으로 보되 친족처럼 대해야 할 것이니 즉 늙인이는 아버지처럼 보고 젊은이는 아들처럼 보아 항상 이런 인자한 마음을 닦아 익혀야 한다. 사람으로서 원수가 되는 것은 나쁜 인연이 있기 때문이니 나쁜 인연이 다하면 도로 친해지는 것으로 친함과 원수는 일정한 것이 아니다. 왜 그러냐 이 세상의 원수로 후세에는 친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나운 분노는 큰 이익을 잃고 인자한 마음이 없으면 불도를 장애한다. 그러므로 미운 원수까지도 친족처럼 보아야 한다. 왜 그러냐 하면 그 원수로 말미암아 나는 불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원수가 나를 해치지 않는다면 인내는 어디서 생기겠는가. 그는 곧 나의 선지식이 되어 나로 하여금 인욕바라밀을 얻게 하는 것이다. 원수에 대해 인자한 마음을 가지게 된 뒤에는 사방중생들을 인자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생각하고 편안하지 못한 일체의 곤충에 대해서도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중생으로서 이 세상의 즐거움과 천상에 나는 즐거움과 성현의 도의 즐거움을 얻는 이를 보면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중생들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보지 않는다. 사랑하거나 기뻐하지 않고 지혜로써 스스로 제어하여 중생을 반연하더라도 사심(捨心)을 일으키면 이것이 사무량심으로서 그 자비가 시방 중생들에게 두루 가득하기 때문에 무량이라 하는 것이다.
수행하는 사람은 이런 마음을 닦아 익혀 혹 분노가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내 몸에 대한 뱀이나 불이라 생각하고 빨리 제거해야 한다. 마음이 흩어져 다섯 욕심에 빠지거나 다섯 덮개에 덮이거든 지혜와 정진의 힘으로 껴잡아 돌아오게 하고 인자한 마음을 닦아 익혀 항상 중생들을 생각하여 부처의 즐거움을 얻게 하되 쉬지 않고 익히면 다섯 욕심을 떠나고 다섯 덮개를 버리게 될 것이다. <오문선경용용법>

방법1.
조용히 좌선자세로 앉아 먼저 가장 친한 사람을 떠 올린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가득 담아 한사람 한사람에게 그 마음을 보낸다. 이때 배우자와 같이 애착이 강한 대상은 친한 사람들 중 제일 뒤로 돌리도록 한다. 참된 정신적 사랑은 누구에게나 똑같아야 한다. 다음에는 아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사랑하는 마음을 보낸다. 마지막으로 적대적인 사람들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보낸다. 처음에는 이 부분에서 마음에 저항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생각으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원한이라는 게 살아가는데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아니라 수행하는데 곧 장애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그리고 그 사람이 되어서 그 사람의 마음을 잘 느껴보라. 그러면 미움의 벽이 서서히 허물어지고 이해와 사랑의 마음이 생긴다. 자주 자비관을 하다보면 자비의 기운이 온 몸을 감싸고 사람은 물론 우주 전제의 모든 존재에 대해 감사와 사랑이 느껴질 것이다.

방법2.
먼저 마음 속에 자비의 마음, 행복한 마음을 갖는다. 그 자비의 기운으로 자신을 감싸고 점점 넓혀 방안, 집안, 우리동네, 우리나라,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지구, 우주로 점점 넓혀 가면서 분명하게 영상화시키고 일체 중생들에게 자비의 기운을 전체에 방사한다. "그들이 적의에서 벗어나고 고통에서 벗어나고, 번민에서 벗어나지이다. 행복하게 살기를!"
이런 평화로운 마음은 수행의 진전에 큰 도움을 준다. 또한 언제나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은 수행자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 경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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