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염불수행

1.염불수행의 의미

2)염불수행의 역사

염불의 역사는 부처님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함경에 보면 삼념, 오념, 육념, 10념 등의 염법이 있다. 즉, 염불, 염법, 염승, 염계, 염시, 염천, 염휴식, 염안반, 염신, 염사의 수행법이다. 이것은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며(여래 10호), 나무불을 표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승단을 생각하는 삼염법, 부처님의 계율과 가장 깨끗하며 선한 공덕이 있는 하늘을 생각하는 오념법, 여기에 보시를 생각하는 것이 더해진 육수념이 있다. 그리고 육수념에 마음의 조용함을 염하는 념휴식, 출입하는 숨을 세고 장단 등을 아는 념안반, 이 몸은 항상하지 않음을 생각하는 념신, 이 몸은 결국 죽는다는 염사 등을 더하여 십념이 되었다.
염불이 지금처럼 중요한 수행법의 하나로 지리잡게 된 것은 역시 정토신앙과 관련이 깊다. 정토신앙은 부처님의 본원에 의지하여 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신앙으로, 정토왕생의 방법으로 염불이 권장되기 때문이다. 정토신앙은 기원 후 1~2세기에 걸쳐 대승불교 운동과 함께 출가교단은 물론 재가자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정토신앙은 인도에서 서역.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와 일본으로 전해졌다.
마명보살의 기신론, 용수보살의 십주비바사론과 지도론 또한 세친보살의 정토론 등에서도 염불은 부처님의 무량 공덕과 근본서원을 확신하는 수행이기 때문에 불.보살과 감응하고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 마치 순풍에 돛단배와 같이 수행하기 쉽고 성불하기 쉬운 이른바, 이왕이수의 행법임을 찬양하였다. 중국에서는 혜원, 담란, 지의, 도작, 선도, 자민, 지례, 주굉 등으로 이어지면서 다양한 논의와 주장들이 있었으며 다른 종파와 결합하여 쌍수하는 모습으로 정착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부터 정토신앙이 대중 속에 뿌리내렸다. 원효, 자장, 의상스님 등 신라의 대표적인 스님들은 물론이고 많은 학승들에 의해 정토삼부경에 대한 번역과 각종 주석서가 집필되어 정토교학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하였다. 고려시대에도 대각, 보조, 태고, 나옹스님들에 의해 선종을 위시하여 화엄 법상 천태 밀교 등의 각 종파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독자적인 종파로는 성립하지 못하였고, 조선시대에 함허, 서산, 사명대사 등이 선과 염불을 융합한 선정일치의 견지에서 염불을 역설하여 지금도 염불은 승속을 막론하고 가장 대중적인 수행법으로 자리잡고 있다.
역사적인 예로보면 발징화상(發徵和尙)의 만일염불회가 있다. 만일염불회의 동참대중은 승려 31인, 신도 1,828인이었다. 신라 경덕왕 17년(758)에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일만일 염불정진을 시작, 29년 만인 병인년(786)에 만일이 되었다. 그 날 금빛찬란한 아미타불이 현신하여 염불대중을 차례로 극락으로 인도하였음을 <삼국유사>는 전하고 있다.
염불만일회가 처음 개설된 도량이 바로 금강산 건봉사이며 발징화상에 의하여 창도되었다. 건봉사의 염불만일회를 기점으로하여 한국의 대소사찰에는 염불당이 들어서고 만일회의 염불결사운동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현풍 도성암에서는 1624년 성범(成梵)화상의 주도로 일만 팔천일 염불회가 개설되기도 하였다. 근래들어 염불에 대한 불교인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만일염불결사가 새롭게 계승되고 있다.
일본은 헤이안시대 말에서 가마쿠라시대로 들어오면서 법연이 정토종을 개창하고 그의 제자인 친란은 정토진종을 개창하였다. 또한 일편은 각지를 돌아다니며 춤추며 염불하는 법을 가르쳐 종교적인 절정을 맛보게 했으며, 신기(神祇)신앙과 아미타신앙을 융합하여 모든 것이 나무아미타불의 명호밖에 없다고 설하는 시종을 열었다. 이들 정토교의 교파는 그 후 각각 발달하여 일본불교의 큰 흐름을 형성하여 현재에 이른다. 현재 대표적인 정토교는 정토진종과 서산정토종, 시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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