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염불수행

2.정토신앙과 염불수행

5)극락정토

우리가 이루고자 하고 도달하고자 하는 정토는 어떤 곳인가. 우리는 왜 정토왕생을 원해야 하고 또 어떻게 그것을 이룰 수 있는가.

①정토의 정의

아미타불의 본원으로 건립된 정토의 이름이 극락정토이며 흔히 극락세계라 하는데 범어 수하마제(須訶摩提)의 뜻 번역이다. 그런데 극락정토란 청정하고 안락한 국토의 뜻으로서 다섯가지 흐린 것(五濁)이 없고,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비롯한 모든 괴로움이 없으며, 오직 즐거움만 있는 세계로서, 생사윤회하는 삼계를 뛰어넘은 영원한 낙토(樂土)임을 경전에서는 찬탄하여 마지 않는다. 그래서 극락정토는 모든 불 . 보살이 수용하는 청정한 보토(報土)인 동시에 중생들 또한 번뇌 업장만 소멸하면 금생과 내세를 가리지 않고, 스스로 보고 느끼고 누릴 수 있는 상주불멸(常住不滅)한 실상의 경계인 것이다.
이렇듯 극락세계는 시간 . 공간을 초월한 영생의 세계인데도 경에는 십만억 국토를 지난 아득한 서쪽에 있다고 한 것은 번뇌에 때묻은 중생의 분상에는 실재하지 않는 꿈같은 세계이기 때문에 중생의 차원에 영합(迎合)한 비유와 상징적인 표현임을 경전을 정독 음미할 때 충분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을 것이다. 범부의 망정(妄情)을 여윈 성자의 정견(正見)에는 사바세계 그대로 극락세계일지라도, 온갖 번뇌에 얽매이고 가지가지의 고액이 충만한 현실에 시달린 고해(苦海) 중생에게는 영생 안온한 극락세계란 역시 너무나 머나먼 이상향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 중생은 필경 돌아가야 할 본래 고향인 극락세계를 동경하고 흠모하며, 거기에 이르기 위한 간절한 서원을 굳게 세우고, 한량없는 선근공덕을 쌓아야 할 것이다.

정토란 맑고 깨끗한 땅으로 번뇌가 없는 곳이란 뜻이다. 번뇌가 있는 중생이 사는 곳이 예토이고 번뇌가 없는 불보살이 사는 곳이 정토이다. 그래서 정토를 불토 또는 불국토라고 한다. 따라서 정토란 사후에 가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한 마음 돌려 깨달으면 바로 정토에 남을 알아야 한다. 이 정토는 흔히 말하는 천상(천당, 천국)과는 달라 3계와 6도를 벗어난 곳이다. 천상은 6도 윤회 중의 최상의 곳으로 사람들의 흠모의 대상이 되는 곳이지만 이곳도 업에 끌려가는 윤회의 세계이므로 복이 다하면 다시 3악도에 떨어질 수도 있다. 이에 반해 정토는 욕계 색계 무색계를 벗어났으며 6도 윤회를 벗어난 세계이므로 그곳은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세계이다. 그곳은 고통이 없고 기쁨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극락이라고 하는데 이 즐거움도 천상의 즐거움이 비길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천상의 즐거움은 한계가 있는 즐거움으로 유루복에 그치지만 정토의 즐거움은 진리 속에서 나고 진리와 함께 하는 법락으로 무루복인 것이다. 따라서 천상의 복덕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공덕이 있으니 바로 성불의 터전인 것이다. 정토의 구체적인 모습은 앞의 법장비구의 48대원을 이룬 것이 정토이니 그것을 그대로 그려보면 될 것이다. 또한 <관무량수경>과 <아미타경>에도 정토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정토란 한마디로 성불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이 잘 갖추어져 있는 것으로 그곳에 태어나면 성불이 보장되는 곳이다. 그러므로 불자들은 천상에 나기를 바라기 보다 정토에 왕생하여 윤회로부터 해탈하고 부처를 이루기를 마땅히 원해야 할 것이다.

②유심정토와 타방정토
그렇다면 이러한 정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해 타방정토설과 유심정토설이 있다. 타방정토란 이 세상 밖 어느 곳에 정토가 실제로 있다는 것이고, 유심정토란 우리 마음 밖에 따로 찾아야 할 정토는 없으며 마음이 청정하면 그 곳이 곧 정토라는 것이다.

유심불토라는 것은 마음을 깨달아야 비로소 날 수 있는 곳이니, <여래부사의경계경>에 이르기를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따로 있는 바가 없고 오직 自心에 의지한다. 보살은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과 모든 법이 오직 마음의 현상임을 분명히 알아서 수순인(隨順忍 ; 화엄의 '十忍品'에 나오는 보살이 무명번뇌를 끊고 온갖 법이 본래 적연한 줄 깨달을 때 생기는 열 가지 安住心 가운데 第二忍. 따라서 忍은 認의 뜻이 있다. 이 忍은 지혜로 온갖 법을 생각하고 관찰하여 진리에 기꺼이 따름을 말한다)을 얻고는 혹은 초지에도 들며 몸을 버리고는 묘희세계에도 나며 혹은 극락의 정토에도 나는 것이다" 하였다.
그러므로 알라. 마음을 알면 바야흐로 유심인 정토에 나거니와 경계에 집착하면 다못 반연하는 바의 경계 가운데만 떨어질 것이니, 이미 이와 같이 인과가 차이가 없는지라 곧 마음 밖에는 법이 없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평등의 문'과 '무생의 뜻'을 비록 교에 의지해서 믿기는 하지만 당인(當人) 스스로를 살펴보아 역량은 미흡하고 관력(觀力)은 얕으며 마음도 또한 분주히 들뜬다면 반연하는 바의 경계는 강하고 무시겁래로 사사로이 익혀 온 습기는 무거운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이러므로 이런 이들을 위해 제불께서 방편문을 베푸시었으니, 간절한 원력과 가피의 힘으로 모름지기 불국에 나서 인연따라 인력(因力)을 쉽게 이루고 속히 대승의 보살도를 행할 것을 권하신 것이다. 이를테면 <기신론>에서 "중생이 처음 이 법을 배워 올바른 믿음을 구하려 하나 마음이 성략(怯弱)하므로 이 사바세계에서 항상 부처님을 만나뵙고 친히 공양하지 못할까 근심하기를 '신심을 성취하기 어렵다' 하여 뜻이 물러나려 하는 이는 마땅히 알라. 여래께서 뛰어난 방편을 두어서 신심을 섭호(攝護)하셨나니, 뜻을 오로지 하여 부처님을 염하는 인연을 지으면 원(願)을 따라 타방불토에 득생하여 항상 부처님을 친견하며 또한 악도를 기리 떠날 것이니, 이른바 수다라에 설하기를 '만일 어떤 사람이 오로지 서방 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을 생각하며 닦은 바 선근을 회향하여 저 세상에 나기를 간절히 원한다면 뜻따라 곧 왕생하게 되리라'고 하신 것이다. 항상 부처님을 뵙는 까닭으로 마침내 물러남이 없으리니, 이와 같이 저 부처님의 진여법신을 관찰하여 부지런히 닦아 익힌다면 반드시 원생함을 얻어서 정정(正定)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고 한 것 등이다. <만선동귀집 제2장>

유심정토와 타방정토 설을 모두 긍정하고 있다. 상근기 보살은 마음을 깨달아 정토에 나니 유심정토가 맞는 말이나, 하근기 중생은 마음을 깨닫기가 어려우므로 부처님이 방편으로 베푸신 타방정토에 의지해야 한다고 하였다. 서로 상반될 것만 같은 유심정토와 타방정토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다음의 예문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이가 "내 마음 밖에 따로 정토가 없으니(唯心淨土), 10만억 찰 밖에 어찌 따로 정토가 있으랴" 하였다. 이 유심정토의 설은 원래 경에서 나온 것으로, 결코 그릇된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말만을 인용하여 근거로 삼는다면 그 뜻을 잘못 안 것이다. 대개 마음이 곧 경계로서 마음 밖에 경계가 없는 것이요, 경계가 곧 마음으로서 경계 밖에 마음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경계가 바로 마음이라면 어찌 굳이 마음에만 집착하여 경계를 배척할 수 있겠는가. 경계를 버리고 마음만을 주장하는 자는 마음을 깨닫지 못한 자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죽창수필 2집>

마음 밖에 경계가 없으니 또한 경계 밖에 마음이 없다. 이러한 마음과 경계의 관계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정토가 마음 안에 있느니 밖에 있느니를 따지는 것이다. 경계라는 것이 마음을 떠나 있을 수 없으나, 경계는 분명히 있으니 유심정토라고 하는 것과 타방정토라고 하는 것이 근기에 따른 구분임이 명백하다. 이것을 모르면서 부질없는 의심을 일으켜 이것저것 따져본 들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서쪽으로 십만팔천리 밖에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제자가 항상 보오니 승속간에 흔히 아미타불을 염하여 서방에 태어 나기를 원하옵는데 과연 저 곳에 태어날 수 있는 것이옵니까? 청컨대 화상께서는 이 의심을 풀어 주옵소서" 하고 자사가 또 여쭈었다.
"사군이여, 잘 들으라. 혜능이 말하리라. 세존께서 왕사성 안에 계실 적에 서방으로 인도 교화하는데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경문에 분명히 '여기서 멀지 않다' 하셨고, '만일 현상계의 공간 거리로 말한다면 잇수로 10만 8천이라' 하셨느니라.
이것은 곧 몸 가운데 10악과 8사를 가리킨 것으로서 멀다는 말씀인 것이다. 멀다고 하신 것은 낮은 근기를 위함이고 가깝다 하신 것은 높은 근기를 위함인 바, 사람에게는 두 가지가 있지만 법에는 두 가지가 없느니라. 미하고 깨달음이 다르기에 견해가 더딤과 빠름이 있나니 미한 사람은 염불해서 저 곳에 태어나기를 구하고 깨달은 사람은 제 마음을 스스로 깨끗이 하나니,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그 마음의 깨끗함을 따라서 곧 불도가 깨끗하다' 하시니라.
사군이여, 동방 사람이라도 마음이 깨끗하면 죄가 없는 것이요 서방 사람이라도 마음이 깨끗치 못하면 역시 허물이 있는 것이니 동방 사람이 죄가 있을 때에는 염불함으로써 서방에 태어나기를 원하거니와 서방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에는 염불하여서 어느 나라에 태어나기를 원할 것이냐? 어리석은 범부는 자성을 모르므로 제 몸 속의 정토를 알지 못하고 동방이니 서방이니 원하지만 깨달은 사람은 어디에 있으나 한 가지이니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머무는 바 곳을 따라서 항상 안락하다' 하셨느니라.
사군이여, 마음 자리에 착하지 않은 것만 없으면 서방이 여기서 멀지 않으려니와 만일 착하지 못한 마음을 품고 있다면 아무리 염불을 해 봐도 태어나기 어려우니라. 내 이제 여러 선지식들에게 전하노니 먼저 10악을 없애는 것이 10만리를 가는 것이고 8사(邪)를 없애는 것이 8천리를 지낸 것이니 생각 생각 성품을 보아 항상 평등하고 곧 바르게 행하면 이것이 손가락 한 번 튕기는 사이에 문득 아미타불을 보는 것이니라.<육조단경>

유심정토와 타방정토는 근기에 따른 설명의 차이일뿐 결코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니, 낮은 소견으로 감히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마음밖에 경계가 없으니 마음이라고 해도 경계라고 해도 본래 둘이 아닌 것이다. 다만 깨달은 사람은 둘이 아닌 줄 알거니와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모르고 하나만을 고집하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으로 본성을 깨닫고 모든 악을 여의면 곧 정토에 나려니와 10악과 8사를 끊지 못하면 정토는 멀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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