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염불수행

3.염불의 갈래와 방법

2)지명염불방법

여러 가지 염불법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방법이 지명염불이다. 이것은 법장비구의 48대원 가운데 열 여덟 번째 원에 의거한 것으로, 후대 정토교가들은 이것을 '염불왕생원'이라하여 칭명염불을 극락왕생의 수행법으로 가장 중시하였다. 어떻게 이름만 불러서 정토왕생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청화스님은 "부처님 말씀을 안 믿을 수가 없는 동시에, 생각해 본다 하더라도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어찌 그런고 하면, 원래 부처님인지라 또는 부처님의 이름은 사람 이름과 달라서 부처의 공덕을 거기에 간직해 있는 것입니다. 사람 이름도, 그 사람 이름을 자꾸만 부르게 되면 그 사람 영상이 떠오르는데, 하물며 부처님 이름은 우리가 본래 부처인 동시에 부처님의 공덕을 거기에 다 간직한 이름인 것인데 말입니다. 그러기에 명호부사의(名號不思議)라. 이름 자체가 부사의란 말입니다. 우리 같은 김아무개, 누구 아무개 이것은 부사의한 것이 아닙니다. 중생이 아무렇게나 지은 이름이지마는, 부처님 이름은 부처님께서 친히 무량공덕을 거기에 갊아있게(藏) 담게시리 만든 진리 이름이기 때문에 이름만 불러도 우리의 업장이 녹아져 옵니다. 또 우리가 본래 부처고 말입니다. 따라서 자꾸만 외우면 외울수록 우리 마음에 부처의 종자가 더 심어지고, 업장 종자는 차근차근 감소가 됩니다. 그렇게 되어서 부처를 생각하는 마음은 더욱 한결 강해지고 드디어는 우리 마음에 부처님을 생각하는 마음만 남으면 그때는 성불하게 되겠지요. 원래 부처니까 말입니다. 따라서 염불만 해도 성불한다는 말씀이 조금도 틀림없는 말씀입니다."하였다.({전통선의 향훈})
지명염불의 공덕은 의심할 바가 없으나 앞서 보조스님이 말씀하신대로 자신의 업을 청정히 하지 않고 입으로만 염불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에 대해 휴정스님도 "마음은 바로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끊임이 없고, 입은 부처님의 명호를 분명히 불러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 이렇듯 마음과 입이 서로 응하면 그 한 생각 한 소리에 능히 80억겁 동안 생사에 헤매는 죄업을 소멸함과 동시에 80억 겁의 수승한 공덕을 성취한다."(청허 휴정스님 청어당집)고 하였다.
지명염불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구체적인 방법을 알아보자. 염불할 때의 환경이나 심경, 혹은 염불하는 사람의 근기에 따라서 그 적절한 염불하는 방법이 갖가지로 다를 수 밖에 없다. 방법마다 모두 나름대로의 작용과 특징이 있으니, 행인이 염불할 때 아래에 열거한 적합한 방법을 스스로 잘 선택하여 실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만약 어떤 방법으로 염불할 때 이것으로는 그 당시의 심경을 진정시킬 수 없다고 생각되면 다른 방법으로 바꾸어도 해로울 것은 없다. 다만 그 상황에서 능히 마음을 안정시키고 망념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 비유하면 병을 치료하는 데는 병을 치료하기에 좋은 것이 곧 양약인 것과 같은 것이니, 중생의 망념이 병이요, 부처님의 명호가 약이요, 염불하는 것이 바로 묘약을 먹는 것이다. 이하 {정법개술}에서 인용한다. 매우 구체적이고 다양한 염불방법들이 제시되고 있으니 초보자들도 쉽게 따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①고성념(高聲念)
염불할 때 큰 소리로 전신의 힘을 다하여 '나무아무타불'하고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다. 이 방법은 기운을 소모하고 목을 쉬게 하므로 오래 지속할 수는 없다. 다만 혼침과 게으름을 대치하여 계속 일어나는 잡념을 제거하기에 좋은 방법이다. 행자가 염불할 때 혼혼하여 잠이 오려 하거나 생각이 흐리멍텅하면 용맹스럽게 정신을 차려 큰 소리로 또렷또렷하게 염하면 금방 머리가 개운하고 정념이 회복되어 전과 같이 무궁한 활력과 강력한 작용이 솟아나는 것을 느낄 것이며, 아울러 곁에서 이 소리를 듣는 자로 하여금 염불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할 것이다.
옛날 영명 선사가 항주 남병산에서 염불할 때, 산 아래 길 가는 사람이 그 소리가 천락(天樂)이 허공에서 울리 듯 분명하고 크게 들려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하니, 바로 이 염불 방법을 쓴 것이다.

②묵념(默念)
염불할 때 겉으로 보기에는 입술만 움직일 뿐, 소리는 내지 않으나 '나무아무타불'하고 염하는 것은 행자의 심식 중에서 분명하고 또렷또렷하므로 마음이 다른 곳으로 달아나지 않고 정념이 한 덩이를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그 효과는 소리를 내는 것에 비하여 부족함이 없다. 이 방법은 누워 있을 때나 목욕할 때나 병이 들었을 때나 변소 갈 때 등에 적합하며, 그 외 소리를 내기에 불편한 상황이나 공공 장소에서 적합하다 하겠다.

③금강념(金剛念)
염불할 때 음성이 크지도 작지도 않고 중간으로 하되, 한편 염하면서 한편 그 소리를 자신의 귀로 듣는다. 넉 자(아미타불)나 여섯 자(나무아미타불)를 막론하고 한 자 한 자를 분명히 염하고 들으면, 생각이 다른 곳으로 달아나지 않고 자연히 마음이 안정된다. 이 염법은 효력이 매우 크므로 금강에 비유한 것이다. 금은 긴밀함을 비유하였으니, 긴밀하면 외경에 빠져들지 않을 것이요, 강은 견고함을 비유하였으니, 견고하면 잡념이 능히 파괴하지 못하는 것이다. 각종 염불방법 중에서 이것이 가장 널리 쓰이고 있다.

④각조념(覺照念)
염불할 때 한편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서 한편으로는 자성을 회광반조(回光返照)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나의 마음과 불심, 나의 몸과 불신이 한 덩이가 되어 환하고 또렷또렷히 시방에 꽉차며, 모든 산하대지의 방사나 기구가 일시에 소재(所在)를 잃어버리며, 내지 자기의 사대색신도 어느 곳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이 되면 보신이 죽기 전에 이미 적광을 증득하며 불호를 처음 부를 때 곧 삼매에 들어가서 범부의 몸으로 부처님의 경계에 참예할 수 있으니, 이보다 빠른 법은 없을 것이다. 애석한 것은 상상근인이 아니면 능히 깨닫고 실행할 수 없으므로 제도할 수 있는 근기가 비교적 좁은 것이 흠이라 할 것이다.

⑤관상념(觀想念)
염불할 때 한편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서 한편으로 부처님의 존엄한 신상이 분명히 나의 앞에 서 계시면서, 손으로 나의 머리를 어루만지시기도 하고 혹은 옷으로 나의 몸을 덮어주시는 것을 관상하는 방법이다. 또한 관음세지가 부처님 곁에 서 계시며 현성(賢聖)이 나를 위요(圍繞)함을 관상하며, 혹은 극락국의 금지(金池)와 보지(寶池), 화개(花開), 조명(鳥鳴), 보수(寶樹), 라망(羅網) 등이 빛나고 화려한 것을 관상한다. 만약 관상이 깊어지면 몸이 그대로 극락국토에 노닐 것이요, 설사 깊지 못하더라도 염불의 조연(助緣)이 되어 정업(淨業)을 성취하기에 손쉬울 것이다. 만약 오래오래 관하고 성숙하게 하여 평소에도 심목(心目) 중에 또렷이 있어서 하루 아침에 보체(報體)가 죽더라도 차방 진연(塵緣)에 끌리지 아니하면, 극락국의 승경(勝境)이 일제히 앞에 나타날 것이다.

⑥추정념(追頂念)
염불할 때 위의 금강념과 같은 방법을 쓰되, 다만 글자와 글자 사이와 글구와 글구 사이를 연속하여 지극히 긴밀하게 하여, 한 글자가 한 글자를 뒤쫓으며 한 글구가 한 글구를 이어서 중간에 조그마한 틈도 없이 함으로 추정념이라 말한다. 이렇게 앞을 뒤쫓아 서로 긴밀하게 하여 조그마한 틈도 두지 않기 때문에 잡념이 들어올 틈이 없는 것이다. 이 법으로 염불할 때는 정신이 긴장하고 마음과 입이 항진(亢進)하여 정념으로 하여금 잠깐 사이에 고요한 경지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이 염법은 효력이 지대하므로 정업행인이 흔히 이 방법을 채용한다.

⑦예배념(禮拜念)
염불할 때 한편으로 염불하면서 한편으로 절을 하는 방법이다. 다만 일구를 염하고 한 번 절하거나, 자구는 상관하지 않고 염하면서 절하고, 절하면서 염하여 염과 절을 병행하여 몸과 입을 합하게 하며, 게다가 마음 속에 부처님을 생각하면 삼업이 집중하고 육근이 모두 섭수하게 된다. 이 방법은 우리 몸에서 능히 작용을 발생하는 기관을 모두 염불하는데 쏟아넣어 염불 이 외의 일이나 염불 이 외의 생각은 조금도 용납치 않는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방법은 특별한 정진이므로 효력도 특별히 크다. 다만 절을 오래하면 몸도 피로하고 숨도 차므로 다른 방법과 겸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요, 이 방법만을 전용하는 것은 무리일 듯하다.

⑧기십념(記十念)
염불할 때 염주로써 수를 헤아리되, 열 번 불호를 염하고 한 알의 염주를 넘기는 방법이다. 이와 같이 마음속으로 염불을 하면서 수를 기억해야 하므로 전념하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전념해 지는 것이요, 만약 전념하지 않을 때는 수목(數目)이 착란해 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방법은 억지로 전념하게 하는 방편이므로 잡념을 퇴치하는 데에 지극한 공효(功效)가 있다.

⑨십구기념(十口氣念)
염불할 때 다만 추정법을 써서 염하되, 한 번 숨을 들이마셔서 내뿜을 때까지 계속 염불을 하는 것을 일구념이라 하고, 이와 같이 열 번 하는 것을 십구기라 한다. 이 방법은 염불할 여가가 없이 매우 바쁜 사람을 위하여 특별히 시설한 방편법으로, 십구기를 마칠 때까지는 대략 5분 남짓 소요된다. 이렇게 매일 한 번씩만 십구기를 하여도 능히 극락국에 왕생할 수 있으니, 비록 매우 바쁜 사람일지라도 능히 이렇게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미타 제18원에 '시방 중생이 나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하면서 십념만 하고서도 만약 왕생치 못하면 정각을 이루지 않겠나이다' 한 원문(願文)을 근거하여 시설한 것이다. 고인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소위 십념이란 곧 십구기를 두고 말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를 보면 부처님의 원력이 매우 광대하며 정토법이 또한 매우 진실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니, 그러므로 비록 십념만 하더라도 임종에 부처님이 와서 반드시 영접하는 것이다.

⑩정과념(定課念)
염불하는 데 있어서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처음은 부지런히 시작했다가 나중에 가서는 나태하여 항심(恒心)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고금의 행인이 염불할 때에 하루에 일정한 양을 정해놓고 어김없이 실행함으로 해서 도심이 물러가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불호의 양에는 구애됨이 없이 고인들은 매일 십만념 혹은 칠만, 오만 등을 정해놓고 항상 이를 실천하였으니, 그 정진력을 알 수 있겠다. 다시 말하면 이 방법은 환경과 자신의 역량을 참작하여 일정한 양을 정하되, 한 번 정한 후에는 어떤 바쁜일을 막론하고 기필코 정한 수를 채워야 할 것이요, 부득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다음날 반드시 부족한 양을 채워서 염불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만약 처음 시작할 때는 용기 백배하여 너무 많은 양을 정했다가 뒤에 가서는 감당치 못하면 이것도 좋지 않으며, 처음부터 너무 적게 정하면 나태하기 쉬우므로 이것도 옳지 않다. 그러므로 양을 결정할 때는 자세히 요량해야 할 것이다.

⑪사위의중개념(四威儀中皆念)
행자가 정종(淨種)이 순숙해지면 염불이 저절로 정진이 되어 양을 정하는 것으로 만족치 않고, 양을 정한 외에 낮이나 밤이나 상관없이 잠들기 전에는 거의 염하지 않을 때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사위의중개념으로서, 이렇게 오래하여 습관이 되면 일구의 미타가 영원히 입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예는 고인의 왕생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어떤 대장장이는 쇠를 두들기면서 염불을 끊이지 않았으며, 어떤 두부장수는 콩을 갈면서 염불을 잃지 않더니, 최후 염불소리가 끊어지면서 그대로 서서 죽었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모두 우리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과연 이런 정도에까지 이를 수 있다면 양을 정하든 정하지 않든 그런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⑫염불념개념(念佛念皆念)
위에서 말한 사위의중개념은 구념을 가리킨 것이나, 여기서 말하는 염불념개념의 개념의 염자는 심념(心念)을 지적한 것이다. 곧 입으로 염하거나 입으로 염하지 않거나 관계없이 심중에서 늘 염불하고 있으며, 입으로 염불하지 않을 때에도 심중에서 염불하는 것이니, 곧 지명 외에 관상이나 관조할 때에도 바로 지명 중에 있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단지 구념할 때만 관상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행자가 만약 이러한 경지에 이를 수 있으면, 어느 때 어느 경우와, 입으로 염하든 입으로 염하지 않든 관계없이 심중에서 늘 부처님을 생각하여, 정념이 견고하기가 철벽과 같아서 바람이 불어도 들어올 틈이 없고, 차 넘어뜨리려 하여도 파괴되지 않아서 조그만한 세념(細念)이나 잡념도 없을 것이다. 이때는 염불삼매가 이루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져서 저 국토에 태어나는 것은 마치 보증서를 받아 둔 듯하리라.
고인이 말하기를 '염하되 염하지 않으며, 염하지 않으면서 염한다' 한 것이 바로 이러한 경계이다.
만약 염불한 지가 오래되고 공행이 순숙하지 않으면 절대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없을 것이니, 그러므로 초학자가 능히 행할 수 있는 법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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