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음말

수행은 어렵지 않다. 또한 쉽지 않다. 오직 삶의 전부를 걸때에만 궁극의 목표에 이를 수 있다. 삶을 건다는 것은 일상생활 24시간 전부가 수행의 시간이고 공간이라는 것이다. 일상생활을 떠난 수행은 없다. 수행을 어떤 특별한 장소와 시간 동안에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일부밖에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일상생활이 수행이라고 하여 아무런 노력도 없이 살아간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부처님도 한거정처하라 하였다. 틈나는 대로 수행처를 찾아 수행법을 익힐 것이며, 일상생활에서도 수행법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높은 깨달음을 얻었다 하더라도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다. 일상생활과 단절된 깨달음은 결코 완전하지 못하니 수행과 생활의 조화를 이루어내야 할 것이다.
거듭 당부하지만 어느 하나만을 높다하여 다른 것을 그르다 하지 말며, 다른 사람과 더불어 시비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 제시된 수행법 외에도 더 많은 수행법들이 있으나 우선 이 글을 참고하면서 자기가 힘 닿는데로 힘써 실천하기 바란다. 여기에 대한 영명연수스님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매듭짓고자 한다.

대성께서는 대자대비하시어 마침내 호광(虛 )히 베풀지 아니하시므로 팔만의 법문이 모두가 해탈법 아님이 없고, 일념의 미미한 선행이라 할지라도 낱낱히 진여로 나아가는 것이나, 다만 중생의 근기가 초심도 후심도 있어서 인(隨順忍)이나 법인(無生法忍)을 낼 따름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높은 것만을 집착하여 낮은 것을 배척하지 말 것이며 낮음으로서 높음을 시기하지 말고 모름지기 때를 알아서 스스로 근력을 헤아릴지니, 남의 좋고 나쁨을 평하여 억지로 시비를 세워서는 안되리라. 왜냐하면 말이란 재앙의 시초라 스스로 업장만 부르기 때문이다. 또 무생인을 얻은 보살로서 비록 아법(我法)의 이공(二空)을 증득하였으나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간탐의 더러움을 파하고 오히려 소비(燒臂)하고 분신(焚身)도 하셨으니, 곧 약왕보살이나 승애와 같은 유(類)라. 그러나 만일 인을 갖추지 못한 이라면 비록 지혜의 불길로서 번뇌의 섶을 태우며, 이공(二空)을 요달하여 신견(身見)을 내지 않을 줄 안다 하더라도 혹 현행의 업장이 무거우면 상응함을 얻기 어려울 것이니, 부디 용맹심을 일으켜 진실행을 운용하며 부처님께 공양하여 은혜를 갗고 또한 중생의 고통을 대신하여 자비를 행할 것이다.
조도의 문을 이루고자 한다면 희구(希求)의 생각을 일으키지 말지니, 다만 서로 속이지만 않는다면 일마다 헛되이 버려지지 않으려니와, 그렇지 않고 혹 지안이 밝지도 못하면서 오히려 아집을 내거나 인과만을 구하거나 뜻이 귿세지 못해서 선배들의 자취를 본받기에도 의심을 내는 이들은 실로 날이 갈수록 도업과는 아득히 거리가 멀어지고 말 것이다. 대개 중생은 근기가 같지 않고 그해서 숭상하는 바도 각각이므로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만일 중생이 허망된 마음으로도 해탕을 얻을 수 있다 한다면 나도 또한 거짓말하는 사람이리라"고 하신 것이다.
이러므로 알라. 사(事)는 비록 천갈래로 벌어지나 이(理)는 마침내 한 근원으로 돌아가는지라 모두가 대자비의 선권방편이시니, 혹은 신명을 버림으로 해서 단박에 법인에 들며, 혹은 일심으로 선정을 수습해 밝게 무생을 깨닫기도 하며, 혹은 근본이 청정함을 요달하여 실상문을 증득키도 하며, 혹은 부정관을 지어 원리도(遠離道)에 오르기도 하며, 또 혹은 칠보방사에 앉은 채 성과에 오르기도 하고 혹은 총간수하(塚間樹下)에 처한 채 열반에 나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만선동귀집> 제2장)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석남로 557번 Tel) 052-264-8900 Fax)052-264-8908
Copyright 2006 (c) 가지산 석남사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