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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하며 놀며 배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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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하며 놀며 배우며
    송일/사교과
     
    고즈넉한 가을밤이 점점 깊어가고 있습니다.
    풀벌레 우는 가을밤에는 뭐니뭐니해도 시 한편을 나누는 일이 참 잘 어울릴 듯합니다.
    한편 시로 저의 차례법문을 열고자 합니다.

    삶이 하나의 놀이라면 - 체리 카터 스코트

    삶이 하나의 놀이라면
    이것이 그 놀이의 규칙이다
    당신에게는 육체가 주어 질 것이다
    좋든 싫든 당신은 그 육체를
    이번 생 동안 갖고 다닐 것이다

    당신은 삶이라는 학교에 등록할 것이다
    수업 시간이 하루 스물네 시간인 학교에
    당신은 그 수업을 좋아할 수도 있고
    쓸모없거나 어리석은 것이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충분히 배우지 못하면
    같은 수업이 반복될 것이다
    그런 후에 다음 과정으로 나아갈 것이다
    당신이 살아 있는 한 수업은 계속되리라

    당신은 경험을 통해 배우리라
    실패는 없다, 오직 배움만이 있을 뿐
    실패한 경험은 성공한 경험만큼
    똑같이 중요한 과정이므로

    ‘이곳’보다 더 나은 ‘그곳’은 없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당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어떤 삶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있다
    필요한 해답은 모두 자신 안에 있다

    그리고 태어나는 순간
    당신은 이 모든 규칙을 잊을 것이다

    만약 이 시구처럼 우리의 삶이 하나의 놀이라면,
    저의 바람은 우리의 삶이 이왕이면 유쾌하고 재미나고 또 신나는 놀이였으면 좋겠습니다.
    삶이 이다지도 어렵고 생노병사의 고통은 계속되는데,
    어찌 삶이 신나는 놀이가 되기를 바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재미난 놀이를 하려면 어떻해야 할까요?
    먼저 놀이의 방법과 규칙을 잘 알고 지켜야 재미난 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놀이의 규칙들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깜깜해져 삶의 고통 속을 헤매이게 됩니다.
    삶의 규칙을 잊어버린 이때부터 우리의 삶은 놀이가 아니라 고통으로 가득 찬 지옥으로 바뀌게 됩니다.

    저 역시도 삶의 원칙들은 책으로 보거나 얘기로 들었을 때는 아주 분명하고 쉬워보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가 직접 고통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는 지극히 단순한 삶의 원칙들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더군요.
    저에게는 출가이후부터 최근까지의 삶이 그랬습니다.
    출가 할 당시만 해도 ‘대자유를 찾겠다’며 의기양양했습니다.
    출가만 하면 책에서 봤던 도통한 선사들처럼 되는 줄 알았거든요.
    근데 막상 출가해 보니 제가 그야말로 깜찍한 꿈을 꾸고 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승가공동체의 생활은 새벽 3시부터 밤 9시까지 그야말로 빡빡한 일정이었습니다.
    쉼 없이 이어지는 습의와 일거리가 숨통을 조여왔습니다.
    생전 안 하던 일을 세밀한 절집의 방식대로 하려다보니 작은 일도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또 공부할 시간을 놓치고 허드래 일만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몸이 지치고 피곤해지니 자연히 제 안에 번뇌가 들끓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왔는데, 도무지 의미를 찾을 수가 없네.
    그냥 갈까? 말까? 간다면 어디로 갈까? 더 좋은 곳이 있을까?’ 하루에도 수천수백번씩 번뇌가 일어났습니다.

    번뇌로 고통 받으면서 고통의 원인이 승가공동체의 구조적 문제와 체계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함께 사는 사람들을 탓했습니다.
    그러니 ‘언제든지 떠나도 좋다’는 결론이 내려지더군요.
    언제든지 떠난다 해도 ‘내 탓’이 아니라 ‘승가공동체의 구조적 문제와 사람들 탓’이니 저는 당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맘속으로 결론을 내버리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일상생활로 돌아오면 번뇌는 다시금 되풀이 되었고 마음은 괴로웠습니다.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니 점점 마음의 문이 닫혀가더군요.
    주변사람들에게 공격적으로 대하고 무시하고, 반항하고 타협하지 않게 되더군요.
    당연히 사람들과의 관계는 점점 나빠져 갔고, 더욱 큰 고통의 수렁에 빠져들었습니다.
    스님 된 것이 너무나 힘겹고 후회스럽고 원망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자니’ 모든 걸 다 버리고 온 길인데 쉽게 포기할 수가 없더군요.
    조금만 더 경험해보고 판단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대중의 삶을 함께 뒤 쫒아 오다보니 어느새 강원에 와서 사교반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떤 마음이냐고요?
    우선 매일 가사를 입으며 ‘세세생생 부처님 제자가 되게 해주세요’하고 간절히 발원합니다.
    또 ‘출가해서 제 꼴을 똑똑히 보게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하다’고, ‘그동안 승가공동체를 비판하고 원망하며 주변사람들에게 미운 짓만 골라하며 잘못살았습니다’라고
    참회하고 있습니다.

    왜냐구요?
    출가해서 부처님 법을 배우고 익히며 대중의 삶을 따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의 삶의 문제들이 정리 되었습니다.
    고통의 가운데 있을 때는 저의 삶의 문제가 영원히 해결되지도 않을 것 같았습니다.
    또 이 보다 더 괴로운 일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승가공동체에서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부처님 법에 젖어들었습니다.
    또 다양한 관계 속에서 갈등하고 고통 받으며 스스로를 비춰보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저는 습관적으로 매우 고통스럽다고 느낄 때마다 주변사람들과 환경을 문제 삼고 원망했었습니다.
    불과 얼마전만해도 '문제투성이의 승가공동체와 사람들’이라는 색안경을 낀 채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옹색한 마음으로 주변사람들을 원망하고 미워하며 살아왔습니다.
    근데 사실 고통의 원인은 내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원하는 대로 살겠다는 저에게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출가를 했고, 내 뜻대로 안 되는 세상을 만나 큰 고통을 느끼다 삶의 원칙을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나를 내려놓고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아야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원칙을 이제 막 기억해 낸 거죠.

    결국 저의 앞에 닥쳐온 삶이 문제가 아니였고, 삶을 바라보는 저의 생각과 태도가 문제였던 것을 오랜 시간을 고통한 뒤에 알게된거죠.
    고통의 원인을 알아차렸으니 아마 저는 좀 달라질거고 부처님처럼 '제 2의 화살'을 맞지 않도록 노력해 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저의 미운짓으로 마음고생하신 은사스님과 대중스님들께 깊은 참회의 마음을 올립니다.
     
    마지막으로 법륜스님의 글귀로 제 차례법문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인생살이를 신나게 하려면 탁 트인 마음을 가져야한다. 세상을 사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가! 마치 등산하는 것처럼 인생을 살면 된다.
    이 골짜기도 가보고 저 골짜기도 가보며 살면 되는 것을 세상을 내 울타리 안에 가두어놓고 바라보려하니 그토록 살기가 괴롭고 힘든 것이다.
    갈까말까, 할까말까, 쓸데없이 머뭇거리고 고민할 시간이 없어야한다.
    인생살이가 아파도 아픈 것을 좀 미루어놓을 만큼 재미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 세상을 신나게 살 수 있다.
    이렇게 신나는 세상을 살다가 죽을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나가야 한다. …
    “나는 부처다. 절대로 일그러진 모습으로 쩨쩨하게 살지 않겠다.”는 원을 세우고 힘차게 살아가야 한다.’
     
    *** 현재 운문사 승가대학 사교과에 재학 중인 송일스님의 차례법문 내용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