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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허당 인홍선사

    원허당 인홍선사 주요행장

    원허당 인홍선사

    • 청산은 원래 동함이 없고 백운은 스스로 오고 가기도 하거니와 형극림 중에 하각하고 간과 총리에 장신이라 금일 노두는 과연 어느 곳이오니까? 흰구름 끊어진 곳에 청산이 나타나고 가는이는 다시 청산 밖에 계시나이다. 인홍 노스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89년전인 1908년 무신년 7월 7일 칠석날. 경북 영일군 대송면 동촌리에서 탄생하셨습니다. 부친은 월성 이종순이시고, 모친은 진양하씨 수이이셨습니다. 어머님의 태몽에 장군이 백마를 타고 나타나더니, 과연 세상에 여장부가 출현한 것입니다. 어릴 적에는 여자 아이들과 놀기보다는 남자 아이들과 전쟁놀이를 즐기더니, 언제나 인생무상을 통감하고 자주 추연한 비감에 젖고는 하였습니다.
    1941년 9월 먼지같은 인간세상 만사를 훨훨 털어버리고, 드디어 출가입산의 길을 간택하여 발족초방하셨던 것입니다. 처음 해인사를 거쳐 선지식과 무언함을 한탄하고, 점점 북방으로 올라가 강원도 오대산에 세존진신 탑묘 적멸보궁을 참배하고 상원사에 한암대종사를 친근하니 비로소 가슴이 확 트이는 진리의 법문에 젖어들게 되었습니다.

    세간에 영화롭고 욕되는 일들
    알고보니 거품이요, 몽환이로다.
    오늘날 법문 듣고 모두 잊으니,
    천지가 내 것이요, 광명 뿐일세.

    바로 지장암에 내려가 대비구니 정자 노스님을 은사로 삭발 염의하고, 한암 조실 큰스님을 모시고 득도수계하였습니다. 1943년 강릉 포교당에서 금강산 유점사에서 오신 일운(一雲)율사에게 천불의 보살대계를 수지하고, 바로 금강산 신계사 법기암에 들어가 선옹사이신 공노스님을 친견하고, 영가천도의 기도법을 전수 받고 바야흐로 참선정진에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1945년 서울에 나와 안국동 선학원에 동산율사에게 비구니 구족계를 수지하고 수덕사에 내려가 만공큰스님 회상에서 안거 정진하였습니다. 1947년 다시 오대산에 들어가 한암 큰스님을 모시고 정진하더니, 1950년 6.25동란이 발발함에 큰스님의 "청산묵묵(靑山默默), 좌단생사(坐團生死)" 라는 법문 을 가슴에 새기며, 피난길로 하산하였습니다. 어느날 꿈속에 큰 구두를 얻어신고 천지를 활보자재하였더니, 사불산 대승사, 희앙산 봉암사 등지에서 자운 ㆍ 성철ㆍ향곡ㆍ보문 등 선지식을 만나 재발심하고 월내 묘관음사에서 정진 하던 중 일생일대에 견고 용맹의 대결정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해동에 천고의 밝은 달은
    강남의 만리천을 비추고 있네
    저 맑은 달빛은 본래 피차가 없는 것을
    참선자는 분별 망상 떠나는 길 뿐!
    강풍은 만고에 불고 있고,
    명월은 천추에 변함이 없네.
    만고 천추에 주인공이여,
    명월과 강풍 너 밖에 누고?


    1945년 태백산 홍제사 고찰에 주석하니, 청풍납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일대 회상을 이루었습니다. 1945년 불교 정화끝에는 대구 동화사에 전국 비구니 총림시설을 시도했었고, 대한불교조계종 중앙 종회의원을 역임하였습니다. 1957년 본 언양 석남사 주지에 정식 취임하여 시회대중을 이끌고 들어오니, 가람을 보수하며 선원 강원을 개설하고, 안거정진에 전력하는 한편, 신행단체로 재가 선림회를 조직하여, 그 힘으로 선량답 8,942평을 매입하여 상주물로 삼았습니다. 스님께서는 1976년까지 20년간 대웅전 큰 법당을 비롯 극락전을 중건하고, 정수원 선원, 심검당 선원을 신건 했으며, 청화당, 향적당, 후원, 요사등 9개 건물을 보수하고 침계루, 종루와 일주문을 신축하는 등 사중 전체 당탑가람을 중창하였으며, 정중에 삼층 대탑을 보수 건립하여 진신사리를 봉안하니, 공전의 대작불사로 도량의 면목이 휘황쇄신할새, 그리하여 가지산 식남사의 중창주로 별칭하게 되었습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예하께서는 수차에 걸쳐 공로 표창장을 하사하기도 하셨습니다. 1977년 가람불사를 마치고는 다시 본분으로 돌아가 칠불암, 도성암, 상무주암, 대원사등 선원에 주유하시며 안거 정진에 들었고, 1986년에는 대한불교 조계종 단일계단 비구니 별소계단 전계화상으로 추대되어 전계불사에 참예하였습니다. 1987년에는 대한불교 전국 비구니회 총재로 추대되어 전 비구니계에 비구니 승가의 상징적 존재로 모셔지게 되었습니다. 1990년 선원에 젊은 대중의 정진을 조도키 위해 80고령에도 불구하시고 삼년결사 정진으로 노익장을 과시하며 근행 정진하여 언제나 환희 선열락을 보이셨습니다. 1997년 4월 14일 미질을 보이시며 자주 와선삼매에 드시더니,

    三世佛祖 가신 길을 나도 가야지.
    九旬生涯 사바의 길, 夢幻 아님 없도다.
    一葉片舟 처럼 두둥실 떠나가는 곳
    空中 에 둥근달 밝을 뿐이네.
    하시고, 편안히 입적하시니 세수는 구십이요 승납은 56년이 되십니다.

    약 력
    본 적 : 경북 영일군 대송면 동촌리 901번지에서 월성 이공 종순을 부친으로 진양 하씨 수이를 모친으로 1908년 무신년 7월 7일 출생.

    성 명 : 이 동이(貴同)
    법 명 : 인 홍(仁弘)
    법 호 : 원 허(圓虛)

    1941년 9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월정사 지장암에서 정자스님을 은사로 득도
    1942년 1월 15일 강원도 월정사에서 한암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로 수지
    1942년 4월 15일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상원사에서 3하안거 성만
    1943년 8월 강원도 강릉 포교당에서 김일운 화상을 계시로 보살계 수지
    1945년 3월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 선학원에서 하동산 화상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45년 4월 15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 정혜사에서 2하안거 성만
    1947년 4월 15일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월정사에서 2하안거 성만
    1949년 4월 15일 경남 동래군 월내리 묘관음사에서 하안거 동안거
    1950년 4월 15일 경북 문경군 산북면 대승사에서 하안거
    1950년 10월 15일 경북 문경군 봉암사에서 동안거
    1951년 8월 경남 창원군 상남면 성주사 선원장으로 부임
    1952년 부산시 범어사 원효암에서 동안거
    1953년 강원도 정암사에서 동안거
    1954년 12월 경북 봉화군 소천면 고선리 홍제사 주지 취임
    1955년 7월 대구 동화사에서 정화후 초대 비구니 총림을 설립하려고 (성문주지 스님)총무를 하셨다.
    1956년 대한불교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역임
    1957년 5월 경남 울산군 상북면 석남사 주지 취임
    1962년 선림회를 조직하여 사답 8.942평을 매입 함.
    1964년 5월 16일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 효봉화상으로부터 사찰수호에 대한 공로상을 受함.
    1964년 5월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통도사 주지로부터 사찰보수에 대한 표창창을 受함
    1966년 1월 16일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 효봉화상으로부터 재건 및 도제양성에 대한 표창장을 受함.
    1966년 11월 대한불교 조계종 중앙 종회 의원 사임
    1973년 3층 석가 사리탑 건립
    1976년까지 주지를 역임하시면서 대웅전 극락전 중창 정수선원 심검당 및 료사9동을 신축
    1977년 경남 하동군 쌍계사 칠불암에서 하안거
    1978년 전남 현풍 유가사 도성암에서 하안거
    1979년 지리산 상무주에서 하안거
    1980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하안거
    1986년 9월 대한불교 조계종 단일계단 제 7회 비구니 전계화상을 역임
    1987년 대한불교 전국 비구니회 총재로 추대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