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종립 비구니 선원 석남사 해제 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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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2003-08-12 1956호
산문 나서는 도반 보내고 다시 가부좌
새벽예불 대중공양.....여느 날과 다름없는 음력 보름
통도사서 법회 본 뒤 또다시 수행처로
금당 정수원 심검당 세 선방 80여 스님 정진
해제 전날 조촐한 산사음악회로 모처럼 여유 만끽
석달간의 하안거가 끝났다. 산문을 나서는 스님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얼굴에는 환희심이 역력하다. 아직 깨달음에는
이르지 못했다 해도 큰일을 해낸 자만이 누리는 기쁨과 여유가 담긴 얼굴이다.
이번 하안거에는 전국 91개 선원에서 모두 2000여명의 수좌가 방부를 들였다. 이중에는 34곳의 선원에서 정진한
비구니 스님 1000여명도 들어있다. 세계 최대의 비구니 승단 다운 면모다.
조계종립 비구니 선원 석남사도 해제 전날 모처럼 모여 한담을 나누는 여유를 누렸다. 지난 11일 저녁 울산 가지산
석남사에는 조촐한 산사음악회가 열렸다. 방송국의 모 프로듀서가 우연히 석남사에 들렀다가 비구니 스님의 환대를
받고는 이를 보답하고자 마련한 잔치다. 3년전부터 해제 전날 선방스님과 신도 지역주민이 함께 모여 공부에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쉬는 시간이다. 선원장 법희스님 주지 영운스님을 비롯 선방과 외호 대중들이 모두 모여 잠시나마 또다른
세계에 빠져들었다.
전날에는 대중공사가 열렸다. 그동안의 공부도 점검하고 잘못된 점을 스스로 참회하는 시간이다. 선원장 스님부터 모든 수좌스님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주지스님은 음악제 준비 등으로 잠시 소음을 일으킨 것에 대해 참회했다.
선원장 법희스님은 늘 강조하는대로 대중생활에 철저할 것으로 주문했다.
본사로 돌아가거나 만행을 떠나는 스님들은 이날 미리 짐을 챙겨 우편으로 보냈다. 3000여년전 석가모니 부처님이
죽림정사에서 안거를 시작한 이래 변함없이 지켜오는 선원 생활이지만 변화의 바람은 조금씩 불고있다.
택배로 짐부치는 것도 그 중에 하나. 일흔을 넘긴 노스님은 짐많은 것 부터가 마땅찮지만 중요한 것은 공부자세.
“어제는 택배로 짐을 부치느라 분주했다”는 말로 웃어넘겼다.
<바루공양 모습>
비구니 스님들의 최대 수행도량인 석남사는 공부가 엄하기로 유명하다. 금당(金堂) 심검당(尋劒堂) 정수원(正受院)
세곳의 선방에서는 서릿발 같은 기상이 넘쳐난다. 정수선원은 보통의 선방처럼 결제 해제를 지키지만 결사(結社)도량인 금당선원은 해제가 따로없다. 1년 이나 3년씩 용맹정진하는 수좌들만 모여있다. 심검당은 노스님들이 자유롭게 수행하는 곳.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처를 대표하는 곳 답게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한다.
금당선원은 입방 자격이 까다롭다. 선원에서 5년이상을 나거나 제방선원에서 공부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방부를 들일 자격이 주어진다. 워낙 엄하다보니 보통의 근기(根器)로는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행자의 공부수준에 따라 하근기(下根器),중근기(中根器),상근기(上根器),최상근기(最上根器)로 분류하는 근기는 수행의 길에 갓 입문하여 처음 수행을 시작한 사람을 보통 하근기라 한다. 차츰 수행을 열심히 하여 화두 의심법으로 수행할 정도가 되면 최상근기로 대우한다. 하지만 근기가 시간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5년미만자라도 금당선원 입방 자격이 주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참선중인 스님들>
금당선원은 보통 선원에서 일주일씩하는 가행정진을 한달간이나 지속한다. 4월 보름 결제에 들어가 음력 5월 8월 11월 석달을 가행정진의 달로 삼고 있다. 결제기간은 1년. 현재 금당선원에서 정진하는 스님 24명중 20명이 1년 공부기간을 두고 들어왔다. 이 스님들에게는 음력 7월 보름 해제도 공부하는 날 중의 하루다.
결제철 산철이 따로 없기는 걸망을 지고 산문(山門)을 나서는 스님도 마찬가지.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갈구하는데
결제 해제가 따로 있을리 없다. 석남사는 또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등 백장청규가 엄격하게 살아있다. 밭갈고 논매는 일부터 불공과 대중공양, 법당청소, 도량정비에 이르기 까지 대중들이 돌아가면서 소임을 맡는다.
중요사항은 공의에 의해 결정하며 정해진 일은 맡은바 소임을 다하는 가풍이 살아 숨쉬는 것이다. 석남사 가풍에 젖어
살다보면 공부도 더 잘되는 법. 비구니 수좌라면 누구나 석남사 선원에 방부를 들이고 싶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해제 당일날 여느 때처럼 새벽 예불을 마치고 아침공양을 맞는다. 어제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사대중은 여느 때처럼 좌선에 들어가고 산철동안 다른 곳에서 보내는 스님들은 통도사 해제법어에 참석하기 위해 걸망을 메고 산문을 나섰다. 추상같은 기개로 의심덩어리와 맞서 싸우던 장부(丈夫)에게도 이별의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법인지 산문을 나서는 스님이나 떠나보내는 스님 모두 잡은 손을 놓을 줄 몰랐다.
무더운 여름 선방에서 같이 생활하기 위해서는 인내와 양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더위를 잘 견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고 부스럭 거리는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 최상의 진리를 탐구하는 몸이지만 정작 하찮은 것 때문에 마음을 다칠 수 있고, 그 때문에 대중화합이 깨어질 수도 있다.
아무런 잡음없이 기쁜 마음으로 해제를 맞는다는 것은 모두가 대중을 위해 양보하고 헌신했다는 뜻이다. 함께 가부좌
틀고 공부하던 도반이 잠시나마 먼길을 떠나는데 어찌 아쉽지 않겠는가. 하지만 공부가 선방에만 있는 것은 아닌 법.
앉고 눕고 걷고 행동하는(行住座臥 語默動靜) 모든 일상이 모두 공부고 선(禪) 인데, 또 다른 공부길을 찾아 떠나는
도반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든다.
<새벽 예불>
가지산문을 나선 스님들은 큰 절인 통도사로 향했다. 방장 월하스님, 부방장 초우스님, 주지 현문스님을 비롯 산내 선방 암자에서 공부하던 모든 스님들이 함께 모이는 해제법회에 참가하기위해서다.
방장 월하스님은 “그릇됨을 일격에 바로 본 이는 부디 마음도 놓아버리고 불도 놓아버리며 물도 놓아버린 채 오늘 해제일을 맞아 비로소 진중하라”는 사자후를 토했다. 듣는 스님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큰 스님의 일갈(一喝)은 언제 들어도 등골이 오싹하다. 깊이를 모를 저 먼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며 울컥 쏟아질 것 같은 덩어리가 맴돈다.
“천진자성은 본래 미혹할 것도 깨칠 것도 없으며, 온 시방의 허공계가 바로 나의 한마음의 본체라”는 방장스님의 해제법어를 한참이나 음미하는 듯 묵묵히 앞을 바라 보고 앉았다. 선방 수좌들의 궁극적 꿈인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이미 여러 조사들이 증명한 바 있다. 힘들지만 결제를 빠트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옛날 몽상국사(夢想國師)는 캄캄한 방에서 혼자 정진하다 나른해지는 몸을 견디지 못해 몸을 뒤로 젖히다 그만 뒤로 벌렁 넘어지는 순간 아 ! 하고 깨쳤으며, 향엄(香嚴)스님은 마당에 뒹구는 깨어진 기와조각을 대나무 숲에 던졌다가 기와에 맞아 쪼개지는 대나무 소리를 듣고 개오했다.
영운(靈雲)스님은 복사꽃이떨어지는 것을 보고, 서산대사는 낮에 행각하다가 닭울음 소리를 듣고, 원효대사는 해골물을 마시고 난 뒤, 장경(長慶)선사는 추녀에 매달린 발을 걷어올리는 순간, 깨쳤다. 또 장구성(張九成)이라는 거사는 화장실에서 변을 보는 순간, 조길(趙拮)은 벼락이 떨어지는 순간 득도를 했다.
<통도사에서 열린 해제법회>
하지만 오랜 시간 내공이 쌓이고 쌓여 깨침의 순간이 온 것. 선수후오(先修後悟). 죽을 때까지 결제 해제가 따로 없다.
언젠가는 개오(開悟)를 얻게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온갖 욕망과 싸우며 가부좌를 풀지 않았던 지난 여름 한철을 떠올리며 스님들은 다시 걸망을 메고 영축산을 나섰다. 스님들 발길 닿는 곳 그곳이 바로 선방이요 만나는 사람이 모두 도반이리라. 찬바람 불어 나뭇가지가 무거운 옷을 벗을 때 쯤 이곳 산문은 지금보다 훨씬 크고 깊어진 모습의 수좌들로 넘쳐날 것이다.
울산 석남사 통도사=박부영 기자
사진 김형주 기자
“비구니 스님들 계율 철저하고 정진 잘해”
자리 함께한 석남사 어른 스님들
선원장 법희스님, 유나 현묵스님, 선덕 법용스님, 금당선원 입승 현공스님, 정수선원 입승 상오스님과 주지 영운스님 등 석남사 선원을 이끄는 스님들이 해제 전날 자리를 함께 했다. 일반인은 물론 불교신자들에게도 낯선 비구니 선원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스님들은 격의없이 들려주었다.
결론은 공부에 비구 비구니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아직 비구니 스님 중에 눈밝은 선지식이 나오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은 진하게 묻어 나왔다.
석남사는 조계종립 봉암사 태고선원에 해당하는 비구니 종립선원. 1957년 당시 주지였던 인홍스님이 퇴색해가던 가람을 중수하는 과정에서 정수선원을 신축하여 전국의 비구니 스님들의 참선수행도량으로 삼으면서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도량으로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통도사의 말사인 석남사는 조계종조인 도의국사가 호국 기도도량으로 창건한 선찰(禪刹). 1997년 비구니계의 큰 별로 추앙받던 인홍스님이 열반에 든 뒤에도 제자들에 의해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선맥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72세의 법희스님을 비롯 선덕인 법용 불필(성철스님 속가 딸) 도문스님 등 선원 대중을 지도하는 노스님들이 모두 인홍스님의 상좌들.
금당 결사를 이끄는 입승 현공스님은 인홍스님의 손상좌. 40여년전 뿌리를 내린 비구니 선맥이 벌써 4세대에 걸쳐 이어지며 무성한 가지를 내리고 있다. 노스님들은 초학자들이 공부욕심이 앞서 병에 걸리는 것을 경계했다.
선원장 스님은 “규칙을 지키고 예불 대중공양 108 대참회 등에 빠지지 말 것 등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선덕 법용스님은 “요즘 수좌스님들이 똑똑하고 영리한데 근기가 예전 스님에 못미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스님은 “상기병에 걸린다는 말은 옛날 스님들 이야기고 요즘 스님들은 영리해서 병에 걸리기 전에 멈춘다”고 말했다.
노스님들이 말을 아끼고 조심스러워하는 반면 3세대에 해당하는 현공스님은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펼쳤다.
법납 32세 세납 53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앳띤 모습의 현공스님은 간화선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해법,
비구니 선원의 특성 등 여러 문제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스님은 “3년주기, 10년주기로 흔들린다. 이를 잘 극복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옛날과 달리 요새는 유혹이 너무 많다.
화두선만 지키기가 어려운 조건이다. 비구니 선원이 너무 폐쇄적이라는데 문을 걸어 잠근 봉암사를 보라. 누구나 봉암사를 이야기 하지 않느냐. 모두 포교만 하면 불교 망한다. 우리 불교가 무수히 침체를 거듭했지만 큰 스님이 있어 다시 일어섰다. 간화선 위기라고 하지만 걱정없다. 한명만 깨치면 일어난다. 공부할 수 있는 대책을 만들어주기를 종단에 바란다. 한국 비구니 승단이 이처럼 발달한 것은 비구니 스님들이 계율을 잘지키고 정진을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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