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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우날 울력수행 석남사 비구니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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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신문 2004-4-23 2025호
     '선농일치’…묵언 속 호미질로 마음밭 간다 
     
    지난 20일은 곡우(穀雨). 부정탈까 우려해서 물에 담궈논 볍씨에 눈길조차 주지 않을 정도로 농사꾼에게는 소중한 날이다. 곡우에 가물면 흉년이라고 했는데 다행히 단비가 메마른 대지를 적셨다. 조계종의 유일한 비구니 종립특별선원인 가지산 석남사 스님들도 이날은 농부가 됐다. 아침공양을 마친 뒤 주지 영운스님을 비롯한 종무소 소임자 스님들과 정수선원(正受禪院) 선원장 유나 선덕스님을 따라 대중스님들이 모두 나섰다.
    석남사 100여 대중스님들의 먹거리가 다리 건너 바로 위에 자리한 텃밭에 자라고 있다. 더덕, 도라지, 취나물, 곰달피에다 아욱, 호박, 상추, 쑥갓, 열무, 배추, 감자가 비를 맞아 더 파릇파릇해졌다. 그 사이로 잡초가 무성하다.
    호미가 지나간 뒤로 잡초가 수북히 쌓인다. 스님들의 밭매는 솜씨가 어찌나 뛰어난지 마치 호미에 잡초만 뽑아내도록 ‘코드’를 입력한 것 같다. 덩굴나무가 타고 올라가도록 만든 대나무 지지대를 견고히 손질하고, 잡초를 모아 한곳에 쌓아두는 등 제각기 맡은 소임을 다하느라 모두들 말이 없다. 참선 삼매경이 아니라 ‘울력삼매경’에 빠진 듯 계곡물 소리와 새소리만 고요한 산사의 적막을 두드린다. 호미질을 잠시 멈추고 허리를 편 효림스님은 “스님들은 울력을 수행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모두 즐거운 마음을 갖는다”고 말했다.

    수좌들도 동참…100여 스님들 밭매는 솜씨 능숙
    푸짐한 점심공양 “농부가 곡식 가꾸듯 불성 틔워야”

    불교에서는 예로부터 선농일치(禪農一致)라고 해서 농사를 곧 수행으로 여겼다. 이같은 전통이 생긴 것은 중국에서 선종이 발달하면서부터다. 부처님 당시에는 주로 한곳에 머무는 것보다는 이곳 저곳을 다니며 수행하였는데 이는 인도 풍습의 영향이다. 하지만 불교가 농경사회인 중국에 도입되면서 정주(定住)가 기본 수행행태가 됐다. 스님들의 식생활도 유행(遊行)생활에 적합한 탁발에서 자급자족으로 변화됐다.
    선종에서는 이를 청규(淸規)로 정해 승단을 유지하는 기본 틀로 삼았다. 청규에서는 “땅에 거름주고 이랑을 쌓으며 씨뿌리고 싹을 틔우며, 물주고 김매며 모두 모름지기 때되어 하라”고 했다. 또한 계절의 흐름과 땅의 기운을 함께 헤아려 항상 상치 무우 가지 오이 박 시금치 등을 경작하되 땅을 놀리지 않고 쉼없이 하라고 했다. 총림의 규율을 정한 백장청규(百丈淸規)를 지은 중국 당나라 백장스님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고 말해 농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선농일치의 불교정신은 중국에서는 사라졌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석남사의 곡우날 울력은 바로 선농일치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현장인 것이다.
    하지만 석남사 스님들이 직접 경작하는 양은 가진 농토에 비해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일손이 없어 대부분의 농사를 마을 농부나 종무원들에게 맡긴 것이다. 선농일치의 정신은 아직 살아있지만 현실은 뒤따르지 못한다. 특히 올해는 밭농사를 책임지는 원두(園頭)스님과 논농사를 책임지는 농감(農監)스님을 구하지 못해 여태 껏 공석이다. 그나마 대중스님이 많은 편이라서 내년 농사는 더 활기찰 것이라고 한다.
    산철에도 만행을 떠나지 않고 화두 참선하는 정수선원의 30여 수좌들이 노력한 결과 점심무렵에는 울력이 끝났다. 먹는일에 무심한 선사(禪師)들이지만 이날 점심 공양은 여느 때보다 푸짐했다. 계곡물에 손씻고 공양간으로 향하는 스님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동유스님은 “일한 뒤 먹는 공양은 평소보다 더 맛있다”며 “농부가 곡식을 가꾸듯 스님들도 불성(佛性)의 씨앗을 틔우는데 더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울주=박인탁 기자 parkintak@ibulgyo.com
     
    - 인터뷰/ 주지 영운스님
    “비구니 특별선원에 걸맞는 체계 갖출것”
    선방스님들이 밭에서 일하는 동안 대웅전 앞마당의 야생화를 가꾸던 영운스님은 종단의 비구니 특별선원에 걸맞는 체계를 갖추는데 더욱 매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깨달음에 비구 비구니의 구분이 없다”고 강조하는 영운스님은 “울력도 깨달음을 향한 수행의 연장임을 늘 잊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님은 “울력을 통해 대중들간의 정을 더 돈독히 하고 공부의지를 다진다”며 “각자 맡은 분야에 충실할 때 개인은 수행이 더 깊어지고, 사찰은 더 나은 도량으로 발돋움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울력하나에도 수좌정신을 강조하는 석남사에는 일반 선원인 금당(金堂), 1년동안 용맹정진하는 결사(結社)도량인 정수원(正受院), 노스님들이 자유롭게 수행하는 심검당(尋劒堂) 등 3곳의 선방이 있다. 세계최대의 비구니 승단을 이루고 있는 한국 내에서도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수행도량인 것이다. 석남사의 사중운영은 선방스님들 위주다. 영운스님 자신도 지금은 행정을 맡고 있지만 30년을 선방에서 장판때를 묻힌 구참 수좌. 비구니 계의 큰별이며 석남사 선원을 일으켜 세운 인홍스님의 손상좌다. 선방스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종립특별선원 주지로 제격이다. 선방에서도 아무런 불평이 나오지 않는다.

    스님은 “석남사를 종단 내외적으로 알아주는 것은 5명의 노스님들이 주석하시며 후배스님들이 수행을 제대로 하도록 항상 이끌어 주기 때문”이라며 “어른 스님들 덕분에 사중운영에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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