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제(解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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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2004-08-25 2058호
석달 간의 안거가 끝나면 해제(解制)다. 여름철 하안거(夏安居)는 음력 4월15일부터 7월15일까지, 겨울 동안거(冬安居)는 음력 10월15일부터 다음해 정월15일 까지다. 안거를 시작하는 것을 결제(結制)라고 하며, 끝맺는 것을 해제라고 한다. 해제하고 다음 결제 까지를 산(散)철이라고 한다. 스님들이 선원에 모여 있는 것과 달리 이곳 저곳을 다니며 흩어져 산다는 뜻이다. 결제 때 입방원서를 작성하고 석달 간 맡은 바 임무를 정하는 용상방(龍象傍)을 짜는 절차가 있듯 해제도 안거를 끝맺는 의식과 절차가 있다.
결제가 부처님 당시 의식이듯이 해제 풍습 역시 그 당시부터 생겨난 것이다. 당시 비구들은 안거를 마치면 해제 동안
입을 옷, 발우 등을 손질했다. 법의(法衣)를 빨거나 깁는 등 수선 해 깨끗하게 정돈된 상태로 부처님을 친견했다.
부처님은 대중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안거 동안 견딜만하고 만족하였는가. 편안하고 즐겁게 머물렀는가. 탁발은 힘들지 않았느냐. 먼 길에 피곤하지 않았느냐” 부드러운 말로 안거동안의 어려움과 부처님을 친견하기 위해 온 노고에 대해 치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면 대중들은 “세존이시여, 하안거 동안 견딜만하고 만족하였고 편안하고 즐겁게 머물렀고, 탁발도 힘들지 않았고,
먼 길에 피곤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일제히 답한다. 그 후 안거 동안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일에 대해 부처님께 자세히 보고한다. 각 안거처마다 일어난 일을 소상히 듣고 난 부처님은 잘못을 꾸짖고 해법을 제시했다. 오늘날 해제법회와 비슷한
풍경이다.
사진설명: 석달간의 안거를 마친 스님들은 음력 7월15일 하안거를 마치고 산문을 나선다. 이 때부터 동안거가 시작되는 음력 10월15일 까지 전국의 산하를 돌며 또 다른 정진에 들어간다. 사진은 해제를 맞아 만행을 떠나는 도반을 배웅하는 모습.
부처님은 〈사분율〉제43장 ‘카티나 옷에 관한 건도’(迦稀那衣健度)에서 “안거를 마치고 해야 할 일이 네 가지 있으니 자자를 행해야하고 경계(界)를 풀어야하고, 경계를 맺어야하고, 공덕의(功德衣)를 받아야한다 ”라고 했다.
경계(界)를 푼다는 것은 안거를 위해 잠시 모였던 승가를 해산한다는 뜻이다. 승가는 비구 전원을 말하는 사방승가(四方僧伽)와 현재 특정지역에 거주하는 현전승가(現前僧伽) 이중구조로 구성된다. 이 현전승가가 계(界)에 해당한다. 부처님 당시 이 계의 범위는 멀어도 하루에 왕복할 수 있는 거리였다고 한다.
계의 기본단위는 4인인데 자자는 5인 이상부터 가능했다. 재가신자들이 보시한 시설이나 토지 물품 등은 이 현전승가에 귀속되는 것이 원칙이다. 안거를 마친다는 것은 이 계의 해산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분율에서는 계(界)를 푼다고 한 것이다. 경계를 맺는다는 것은 새로운 승가를 구성한다는 뜻이다.
자자(自恣)는 안거 중에 한 행동에 대해 대중들 앞에서 참회하고 잘못을 지적받는 의식이다. 결제를 하면서 부처님 앞에 나아가 한 철 잘살겠다고 다짐한 후 각자의 처소로 흩어진다.
3개월 안거를 지내고 다시 부처님을 찾아 뵙고 한철을 어떻게 살았는지 점검받는 것이 자자다. 당시 어느 승가단체에서 안거를 하면서 묵언정진을 약속했다. 하지만 침묵을 하다보니 승원(僧院) 운영에 많은 문제가 빚어졌다. 해제 후 부처님 앞에서 그 일을 소상하게 말씀드렸다. 부처님은 서로 원수도 아닌데 말도 하지 않고 불교는 법으로써 교화하는 것인데 벙어리처럼 입다물고 있으면 어쩌냐는 것이냐며 심하게 꾸짖는다. 〈십송률〉 제23권 ‘자자건도’(自恣健度) 첫머리에 나오는 장면이다. 당시 자자가 어떤 것이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분율〉 ‘자자건도’에 따르면 자자는 안거를 마친 음력 16일 저녁에 행하는 것으로 돼있다. 어떤 때는 며칠을 늦추기도 했다. 거리가 멀어 모두 모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자자는 스스로 자자를 청한 사람이 나서, 상좌로부터 순차적으로 나아가며 “만약 보고 들은 것 가운데 의심나는 죄가 있으면 저에게 말씀 주십시요. 저에게 만약 죄가 보이면 바로 법에 따라 참회 하겠나이다”라고 세 번 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현재 한국선방은 해제 전날인 14일 자자를 한다. 하지만 부처님 당시와 같은, 오금저리도록 추상같은 질책은 없다. 원칙대로 실시하다가 서로 감정을 상하는 일도 많아 스스로 참회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그나마 일부 선원에서만 남아있을 뿐이다. 부처님도 자자의 ‘후폭풍’을 염려해 “자자가 끝난 뒤에는 그 잘못에 대해 거론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니 남의 잘못을 지적한다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무척 어려웠던 것 같다.
서로간의 잘못을 지적해주는 자자의식 감동적
한국선방에선 해제전날 좌복천 손질.참회 의식
해제 다음날 ‘카티나옷’을 입는 의식을 했다. 카티나 의식은 신자가 보시한 옷을 분배하여 새 옷을 몸에 두르고 유행에 나서는 의식이다. 이를 공덕의(功德衣)라고 한다. 〈사분율〉제43 카티나 건도 에 따르면 가욋옷을 갖고, 옷을 잃지 않고 대중을 떠나서 먹고, 여기저기서 먹고, 밥먹기 전이나 뒤에 다른 비구에게 부탁하지 않고 마을에 들어가는 다섯가지 인연이 있으면 공덕옷을 받는다고 했다. 공덕의는 안거 3개월을 마친 비구에게 내려졌는데 이 의복을 지닌 비구는 보통은 1개월 최대는 5개월간 계속해서 안거를 지낼 수 있었다. 일종의 안거의 연장인 셈이다. 부처님은 “해제날 받는 옷은 새옷이든 헌옷이든 깨끗하게 빨아서 입어라”고 했다. 부처님 당시 해제에 앞서 옷을 깨끗하게 빨고 손질하는 풍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부처님 당시의 해제의식은 중국 선종(禪宗)에서 보다 구체화 된다. 종색선사의 〈선원청규〉에 따르면 해제 전날인 7월14일 밤에는 전 대중들이 탑에 나아가 경전을 독송하고 차와 향을 올렸다. 이 때 법납 순으로 매긴 대중들의 명패를 준비하여 승당 앞에 배열했다고 한다. 이는 결제 때와 같은 의식이었다.
해제 때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염송을 읊었다. “금풍(金風) 은 들녘을 쓰다듬으며 백제(白帝)는 방(方)을 다스린다. 해제의 때를 맞는다. 석달동안 아무 어려움이 없었으며 대중 모두 편안하였도다. 제불명호를 염송하며 우러러 합장 배례 하며 보고 올립니다”라고 했다. 주지는 “모두에게 감사한다”고 인사했다. 그러면 안거 대중들은 “대중을 어렵게 한 점 엎드려 자비를 바라나이다”하고 사중 소임자 스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러면 요즘 한국 선방의 해제 풍습은 어떤가. 해제 전날 좌복의 홑창 뜯어내 깨끗이 빨고 이불도 손질한다. 다음 철에 정진할 대중들을 위해 새것처럼 만든다. 자신이 입던 장삼도 풀을 새로 먹이는 등 깨끗이 수선한다. 부처님 당시 옷을 손질하고 깨끗이 정돈하던 모습과 하등 다를 바 없는 풍경이다.
음력 7월15일은 백중에다 불교의 큰 명절인 우란분절이기 때문에 사찰에 따라서는 이 행사를 준비하느라 북적거리기도 한다. 비구니 종립선원인 석남사는 하안거 해제를 맞아 산사음악회를 열기 때문에 해제를 앞둔 선방스님들도 적극 거든다. 태백선원은 해제 전날 대중 스님들이 모여 자자를 한다. 안거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스님들이 돌아가며 소회를 밝히고 참회하는 시간이다.
해제날 당일 열리는 해제 의식은 큰 법당에서 열린다. 결제를 지낸 대중과 사중의 스님들이 모두 모여 조실스님의 법문을 듣는다. 총림등 큰 절에서는 산내 여러 암자에서 결제를 지낸 모든 대중들이 함께 참석한다. 의식은 일반법회와 동일하다.
조실스님의 법문을 끝으로 안거를 지낸 스님들은 산문을 나선다. 이에 앞서 머물던 요사를 정리하고 안거증(安居證)을 배부 받는다. 안거증에는 법명과 본사(本寺) 이름을 게재하고 ‘우(右) 납자(衲子)는 모모(某某)선원에서 안거를 성만하였기에 증서를 수여함“이라고 적혀있다. 그리고 해제비가 주어진다.
해제비는 선승(禪僧)들이 다음 안거 때까지 지낼 ’생활비‘ 성격을 갖고 있다. 주지 등 행정을 보는 스님들과 달리 선방 스님들은 용채를 챙겨줄 신도가 없기 때문에 전적으로 이 해제비에 의존한다. 일부에서는 요즘 해제비가 과다 책정되었다고 비판하지만 이는 선승들의 생활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데서 빚어진 오해다. 과거 사찰 살림이 어려울 때는 교통비가 고작이었다. 70년대 상원사 선원은 교통비로 천원을 주었다고 한다.
법회가 열리기전 간물장을 정리하고 걸망을 꾸린다. 걸망 하나에 쏙 들어가는 단촐한 짐이다. 하지만 일부 스님들은 다음철 안거할 곳으로 택배를 하기도 한다. 안거 동안 짐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원래 스님들의 짐이라곤 가사 장삼과 발우 목탁 독송집 등이 전부였지만 최근에는 옷가지가 많이 늘어났고 책도 꽤 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짐을 미리 부치는 스님들이 생겨난 것이다.
산문을 나선 스님들은 제 갈길로 뿔뿔이 흩어진다. 이른바 운수행각(雲水行脚)이 시작되는 것이다. 주지 소임을 보던 스님들은 본래 자리로 돌아가며 특별히 머물 사찰이 없는 스님들은 이곳 저곳을 다닌다. 구례 화엄사는 몇 해전부터 동안거 해제 후 사중 스님과 안거에 들어갔던 스님들이 모여 다례재를 올리고 있다. 화엄사를 거쳐갔던 옛 스님들을 추모하는 다례재를 동안거 해제철에 맞춰 날짜를 잡은 것이다.
해제철이 되면 또 종단과 사중의 여러 대소사가 벌어진다. 범어사는 결제동안에는 주지 선거 등 일체의 사중 행정 일을 못하도록 규약으로 정해놓고 있다. 종단 집행부 역시 종회나 선거를 결제 기간동안 처리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반면 해제철인 9월 10월이 되면 전국의 본말사와 종단에서는 결제 동안에 미뤄졌던 각종 행사가 일제히 열린다.
하지만 궁극의 진리를 갈구하는 선승들에게 해제는 결제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온 산하가 모두 선방이고 보이는 만물이 화두인 선승들에게 결제와 해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